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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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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김주대

  • 기사입력 : 2020-05-28 07: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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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여름 하루 길가 푸른 풀을 보고 있으면

    햇살이 정수리로 들어와 똥구멍으로 나가며 파릇파릇해지는 느낌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선을 아득히 쳐다보고 있으면

    숨 쉬던 공기가 몸 안에 가득 차며 떠오르는 느낌

    노을 진 서쪽 성당 괘종시계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심장의 피를 따라 시계추처럼 박동하고 있다는 느낌

    웃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코끝에 꽃이 피고 미소가 두피를 뚫고 돋아나는 느낌

    오거리 떨이판매 행사장 알바하는 너를 피해 멀리 지나가다가

    문득 돌아보면

    목구멍이 먹먹해지고 얼굴 전체가 식은땀처럼 흘러내리는 느낌

    두 다리가 허둥허둥 떠내려가는 느낌

    미안하다고 몸이 나직이 뇌까리는 느낌

    얼른 지나가자며 나를 배반하는 느낌


    ☞ 여기, 한 젊은 아빠가 보입니다. 한 가정의 풋풋한 가장이 보입니다. 그는 가족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벗을 수 없는 살갗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느낌이 느낌으로 그대로 있는 것, 정리되지 않고 정의되지 않고, 소화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 몸과 언어 사이에서 쩔쩔매는 것, 허둥대는 것, 그러니까 그것은 온통 느낌 투성이며 몸과 관련된 단어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정수리, 똥구멍, 심장, 코, 두피, 목구멍, 얼굴과 두 다리로 생생하게 느끼는 것들이며 피가 돌게 하고 때론 얼굴 전체가 식은땀처럼 흘러내리게 하는 생경한 것들입니다.

    가족이라는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이상 오르내림의 굴곡을 제대로 즐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족은 그렇게 모든 감정의 원천이며 끝없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글을 읽는 오월의 당신은 가족에 대한 어떤 느낌들로 생의 파노라마를 건너가고 계신가요?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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