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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눈물은 왜 짠가

  • 기사입력 : 2020-06-14 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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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진사회팀

    6월 12일 오전 8시 30분,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날씨다. 창원시청 앞 광장에는 저마다 일터로 향하는 차량들이 줄지어 로터리를 빠져나오기 분주하다.

    차량 행렬 옆으로 대오를 갖춘 작업복을 입은 40여명이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다. 이들은 ‘투쟁’이라고 적힌 붉은 머리띠를 두른 뒤, 왕복 10차선 도로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선다. 이들의 뒤엔 ‘더 이상 STX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지 마라’고 적힌 현수막을 손에 든 400여명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고 있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경남도청이다. 걸어서 채 20분이 걸리지 않을 거리다. 선두에 선 40여명이 “투쟁” 구호를 외치고 첫 세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곤 바닥에 큰절을 한다. 천천히 일어서 다시 세 걸음 걸은 뒤 또 한 번 무릎을 꿇고 바닥에 고개를 숙인다. 더딘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향한다. 주변 곳곳에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만류한다.

    땀은 비 오듯 쏟아져 이미 작업복을 적신 지 오래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바닥에 짚을 때마다 온몸이 휘청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버틴다. 쉼 없이 앞으로 향한다. 1시간이 흐르고, 또 한 시간이 흘렀다. 이들의 뒤에서는 지옥 같았던 무급휴직을 이제는 끝냈으면 좋겠다는 동지들의 절규에 가까운 구호 소리가 들린다.

    STX조선 노동자들이 파업 12일째에 ‘삼보일배’에 나선 건 무급휴직을 끝내 달라는 이유 단 하나다. 돈을 벌지 못해 기본적인 생활도 영위하기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2년을 버텼다. 그런데 회사는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으니 휴직을 연장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자존심을 굽히고 유급휴직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이들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시각, 사측은 파업을 철회하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삼보일배가 세 시간을 향해 갈 무렵이었다.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어 발을 끌다시피 했던 50대 중반인 이장섭 지회장이 털썩 주저앉은 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일순, 조합원들은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그들은 이마에 흐른 땀을 모아 훔쳐 내는 척 팔소매로 눈물을 닦아 냈다. 이들과 함께 걸어가며 땀을 흘린 기자도 눈물이 흘러, 한 줄기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물은 왜 짠가.

    도영진 (사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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