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6일 (목)
전체메뉴

[기고] 시민극장, 시민에게 돌려줘야- 박성원(창원시의원)

  • 기사입력 : 2020-06-30 20:22:19
  •   

  • 한때 전국 경제 7대 도시로서 부흥했던 마산은 한 세기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로 극장가 형성되면서, 마산극장에서부터 시민극장, 강남극장, 중앙극장, 제일극장, 동보극장, 동아극장, 피카다리극장, 태흥극장, 연흥극장, 3·15회관 등이 창동 부림시장 일원에 생겼다. 특히 나훈아 무명 시절에는 마산의 이들 극장에 출연한 나훈아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나훈아는 가까운 부산에 자택에 있어 시민극장에 초청가수로 자주 참여한 시민극장 단골 무명가수였다.

    우리는 시민극장의 역사적 배경과 유산 가치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1907년 일제강점기 시절 마산시민들의 토론장이었던 공회당이라는 민의소가 마산부 석정(石町*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개관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영화상영 등 문화활동을 통해 지역문화시설 중심 역할을 하게 됐다.

    민의소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마산구락부가 이를 이어받아 토론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됐다.1920년 6월12일 마산구락부는 발기총회를 가지게 되고,1922년 6월 8일에 마산경찰서 주최의 위생 선전활동 영화를 마산 구락부 회관 광장에서 상영했다. 현재 건물주는 창원시 근대건조물 심의위원회를 신청한 상태이다. 단층 목조 건축 천정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고, 스닥크(카시오)목조건축물도 원형 그대로 잘 돼 있다.

    시민극장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선생의 유년시절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환경 속에서 13~14세의 나이에 마산·진영 등지를 다니면서 시내 주요 영화 개봉관의 간판그림을 그리면서 돈을 벌었다.

    훗날 일본 유학을 떠난 문신선생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계속 시민극장 및 경남 일대 일반 간판을 그려주는 일을 계속하지만 여러 경쟁사가 생기자 추산동 언덕으로 올라가 자신의 화가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동 시대의 정진업 시인은 마산상고를 다니면서 시민극장 내레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전해진다.

    마산 르네상스 시절의 문화예술 부흥의 중심이었던 창동 일대가 불황을 맞으면서 지역의 문화예술시설 역시 문을 닫게 되고,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공간 역시 부족현상이 일어나게 되면서 지역 상권도 바닥을 치게 됐다. 2012년에서야 창동예술촌이 형성되면서 문화예술을 통한 상권 활성화와 원도심 재생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재기되면서 문예공간들이 탄생되고 시민극장 복원 사업이 거론되고 추진되다 무산됐다.

    한 시대의 역사적 흐름과 한국 문예부흥의 중심지였고, 민주정신문화의 성지인 마산원도심의 핵심 문예공간이었던 시민극장의 부활이 절실하다며 최근에 지역 문예단체와 예술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관계 지자체 역시 지역 문예공간과 시설 확충에 고심하고 있다. 문신미술관 이 외에는 창작문화 시설과 활동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이 들어서고, 어디 갈 수도 없는 예총회관 같은 민간 예술인 공간들이 들어서야 하는 형편에 시민극장 복원사업은 가뭄 속에 단비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박성원(창원시의원)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