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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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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직 덜 급했네 - 왕혜경 (전 김해 월산중 교장)

  • 기사입력 : 2020-07-28 21: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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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약에 대한 불신과 주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한 편이다.

    의사가 처방을 내면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먼저 물어본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 골다공증 주사를 맞았다가, 2박 3일간 초주검이 된 이후로 의사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졌다. 왜 이러냐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아프면 진통제 주사 맞으러 오란 얘길 듣고는 아이들 하는 말로 “헐! 정말 답이 없네” 싶었다.

    캄보디아 여행 갔다 돌아오는 날, 전신 마사지를 받고 비행기를 탄 게 원인이었는지 집에 와서 가방 놓는 순간부터 시작한 몸살로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그래서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약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는다. 내 몸은 청정지역 어쩌구 하면서 자신을 세뇌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나 스스로 약을 챙겨 먹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60대 중반을 향해 가다 보니 어제까지 멀쩡하던 곳이 오늘 고장나는 황당한 사태에 자주 맞닥뜨리면서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재직 시에 선생님들이 선물한 이런저런 건강보조식품들 중 복용기간을 넘겨 버린 것들이 먹은 것보다 더 많은데, 새삼 그들의 마음이 고맙고 그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은 나의 무성의함이 미안하고 후회된다. 약을 줄줄이 늘어놓고 먹는 사람들을 보면 코웃음을 치곤했는데 이제는 우리집 식탁에도 줄을 서 있는 약병들이 제법 된다. 역시나. 세상사 장담할 일은 아무 것도 없나 보다.

    생각해 보면 나의 불신은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우리 엄마 세대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약을 먹기만 하면, 병원에 가기만 하면 아픈 곳이 씻은 듯 나을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약 먹는 시간을 1분도 어기지 않으려는 어머니에게 늘 잔소리를 했던 나. 양약은 한 군데 아픈 곳을 낫게 하면 다른 곳엔 반드시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나의 이 절대적인 믿음 역시 이제는 수정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의사의 처방전을 앞에 놓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치료효과와 부작용 사이의 크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나를 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왕혜경, 아직 덜 급했네.”

    왕혜경 (전 김해 월산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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