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우리 동네에는 커피공장이 있다 - 김주경
- 기사입력 : 2020-09-10 08:01:59
- Tweet
-
잠을 터는 새벽도, 나른한 오후 2시도,
창만 열면 코끝까지 막무가내 다가와
‘넌 내겐 언제나 TOP야’*
흐린 나를 깨운다
악마의 유혹에 첫 입술을 빼앗긴 뒤
표정 없는 고백에도 오롯이 뜨거워져
달고 쓴 생의 등고선
황금비율로 가뿐했지
어제의 고소한 맛, 오늘의 쌉쌉한 맛,
무작위로 전송되는 금기의 그 향기에
가득히 취해보는 호사
오늘 밤도 불면이다
* 커피광고 카피의 변용.
☞ 태풍이 세 번 지나가더니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왔습니다. 바람을 타고 편지처럼 오는 커피향이 뭉클합니다. 커피공장이 있는 팔용동에는 창문을 열면 한 잔의 아메리카노와 한 잔의 에스프레소 향이 ‘바람 파도’로 밀려옵니다.
소박한 동네 찻집에서 차를 마시듯, 김주경 시인의 시조 ‘우리 동네에는 커피공장이 있다’를 읽고 있노라면, 시각과 후각과 미각·청각을 넘어 가슴까지 흥건히 젖습니다. ‘악마의 유혹에 첫 입술을 빼앗긴’ 너는 나의 치명적인 사랑입니다. ‘표정 없는 고백에도 오롯이’ 저 혼자 뜨거워져 나를 깨우는 것도 사랑입니다. ‘달고 쓴 생의 등고선’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그 삶도 사랑입니다. 너로 인해 ‘가득히 취해보는 호사’에 오늘 밤은 시인도 불면에 들고,
시인의 진한 마음(행간)을 들이킨 당신도 불면에 들 것입니다.
청명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창문을 활짝 열어 보십시오. 아랫집에서 내리는 커피향이 새처럼 지저귀며 당신 가슴에 가 닿을 것입니다. 당신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포롱포롱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내게 그런 당신이라면 이 정열을 무한리필 해드리겠습니다. 임성구(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