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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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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이수경(로펌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0-09-22 20: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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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가려지긴 했지만, 올해 2월경 마산·창원·진해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이 났었다. 당시 경상남도 김경수 도지사는 판결 직후 환영성명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70년이 걸렸다,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통이 이번 무죄판결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기원한다”며 유족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기사를 접하였을 때, 불현 듯 “우리 동네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건 글이나 소설로 남겨도 남겼을 사건이다”고 했던 모친의 말이 떠올랐다. 모친은 1950년생으로 진주가 고향인데, 유복자로 태어나셨다. 좌익과 우익의 사상 대립이 극에 달하여 결국 한국전쟁이 발생한 해였다. 그리고 그 직전 해인 1949년에 이승만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좌익 포섭이라는 명목으로 국민보도연맹 서울중앙본부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모친은 어른들로부터 들은 말로만 기억하기에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당시 한날한시에 마을 이장을 지내신 아버지를 포함한 마을 청년 7명이 좌익세력으로 몰려서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다리 아래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농사를 짓는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는데, 그 동네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이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는 것을 마을 이장을 지낸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낙선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좌익단체라고 밀고하였단다. 그리고 거짓으로 밀고한 사람은 7명의 마을사람들이 죽던 날 식솔까지 버리고 야반도주를 하였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아들들이 부친의 원수를 갚고자 또 거짓 밀고자를 찾아 수 십 년을 수소문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어떻게 아무런 조사와 재판도 없이 밀고 하나만으로 사람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까 싶어 학창시절에 들었던 모친의 이야기를 흘려들었었다. 그런데,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접하고 국가 권력에 의한, 혹은 권력에 편승한 우익단체들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이 실존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은 대외적으로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좌익 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목적은 좌익세력의 ‘색출’에 있었으며 반정부 세력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것에 있었다. 국민보도연맹 설립 후 남로당이나 인공당 등 좌익 정당은 물론이고 민청, 농조 등 사회단체에 관여한 사람들까지 광범위하게 포섭시켜 나갔는데, 자수기간을 두어 기간 내에 자수한 자에게는 죄의 경중을 떠나 일체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은 물론, 직업까지 알선해주는 등 철저한 신분보장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당시 도 경찰국은 경상남도 자수자 수가 5548명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런 와중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좌익 세력이 가입된 국민도보연맹원 등 요시찰인에 대한 경찰의 예비 검속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특히 문제는 당시 사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도 대거 포함되어 희생되었다는 것인데, 실제 청도군의 경우 희생인의 92%가 농업인으로 좌익 사상에는 무지한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던 것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6년에서 2009년도에 진행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와 국가의 책임을 밝혀냈지만, 예비검속과 사살명령이 누구로부터 내려왔으며 언제 어떤 단위에서 결정되었는지 밝혀내지는 못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활동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억울한 희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국가폭력에 의한 무고한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이수경(로펌 더도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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