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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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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54) 아오국사(我誤國事)

-내가 나라 일을 그르친다

  • 기사입력 : 2020-11-17 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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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중기의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은 함양(咸陽) 출신의 인물이다. 문장에 뛰어나고 특히 시를 잘했다. 예법과 유교 경전에 정통하여 당시 이름난 선비들이 의심나거나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그에게 물었다.

    문과에 급제해서 조정에 나가서는 다른 사람이 빼앗을 수 없는 우뚝한 절벽 같은 기상이 있었다. 인사를 담당하는 장관급에 올랐으면서도 생활은 검소하여 가난한 선비 같았다. 나중에 청백리(淸白吏)로 뽑혔다.

    나라의 인사를 관장하는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었을 때는 공정한 논의를 펼치려고 노력했고 절대 청탁을 받지 않았다. 그의 행정 업적은 뛰어났다.

    언젠가 자기 친척이 찾아가 이야기하다가 벼슬을 구하려는 뜻을 넌지시 비쳤다. 그러자 이후백은 정색을 하며 조그만 책자를 보여주었다.

    그 책 속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과 재주와 행실이 적혀 있었다. 그 책은 이후백이 괜찮다고 생각하여 장차 발탁하려는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 모은 것이었다. 그 친척의 이름도 이미 그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다 보여주고 나서 이후백이 말했다. “내가 자네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은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해서 장차 어떤 자리에 발탁하려고 했던 것이네. 그런데 지금 자네가 벼슬 구하는 이야기를 했네. 벼슬 청탁하는 사람이 벼슬자리를 얻는다면 공정한 도리가 아니지. 아깝도다! 만약 말하지 않았더라면 벼슬을 얻었을 걸세.” 그 친척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이후백은 어떤 사람을 벼슬에 임명하려 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을 그 자리에 임명하는 것이 옳을지의 여부를 부하 관료나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물어서 합의가 된 뒤에 임명했다. 혹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임명했으면 밤새도록 잠 못 이루면서 “내가 나라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我誤國事)?”라고 고민했다.

    지금 국가의 인사권을 쥔 사람들이 이후백처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사람을 이 자리에 임명했을 때 국가 민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 손해가 될 것이냐?”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이나 인사권을 쥔 장관들이 대개는 자기 당파 사람,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 자기가 빚진 사람, 누구의 소개나 청탁을 받은 사람들을 그들의 능력이나 전문성을 묻지 않고 마구 임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한 가지 예만 들면, 주중한국대사 임명이다. 역대 중국대사 13명 가운데서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단 1명, 전문 외교관은 단지 3명, 나머지는 전부 대통령 비서 출신, 선거에 떨어진 자기 정당 사람 등을 임명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우리나라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중국대사는 아주 중요한 자리다. 이런 자리에 전문성 없는 인사를 임명하면 정말 나라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들은 아무 고민 없이 이런 식으로 중국대사 인사를 하였다. 다른 분야도 다 마찬가지였다.

    * 我 : 나 아. * 誤 : 그르칠 오.

    * 國 : 나라 국. * 事 : 일 사.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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