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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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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만두 쟁반 - 허연

  • 기사입력 : 2020-11-19 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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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하게 난 만두 앞에서 약하다. 일찍 떠나보낸 어머니도, 위태로웠지만 따뜻했던 어린 시절도, 제 살길 찾아 흩어지기 전 형제들의 모습도, 줄지어 쟁반 위에 놓여 있던 만두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인생은 만두다. 파릇한 청춘과 짜내도 계속 나오는 땀이나 눈물, 지친 살과 뼈, 거기에 기억까지 넣고 버무리는 만두는 인생을 닮았다.

    하얀 만두피 속에 태생이 다른 것들을 슬쩍 감춰놓은 것도 생을 닮았다. 잘게 부수어지고 갈리고 결국은 뜨거워져야 서로를 이해하는 만두는 생이다.

    뒤엉켜 뜨거워지기 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뜨거워진 순간 출신을 묻지 않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만두는 인생을 닮았다.


    ☞ “삶은, 달걀이다.” 한때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놓고 재치와 익살로 변죽을 울리는 거겠죠. 그렇다면 만두는 시인의 생각대로 인생을 닮았을까요?

    만두 한 개를 따로 떼어 보는 것과 쟁반 가득 줄지어 놓여 있는 만두 풍경이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의 윤곽을 가진 것, 간격을 둔 그 하나하나에는 한 사람의 인생과 다름없는 온전한 서사가 뭉뚱그려져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정과 사연의 만두소들, 더더구나 피와 땀과 슬픔의 농도가 진한 날 것들이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만두 쟁반 위에 만두는 섞일 수 없는 단수이면서, 너와 나 별반 다르지 않은 복수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겁게 익어가는 시간입니다. 서로 뒤엉킬 준비가 되었나요? 장국이 팔팔 끓고 있습니다.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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