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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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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두려운 자리- 이월춘(시인·경남문인협회 부회장)

  • 기사입력 : 2021-03-31 20: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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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년 전부터 진해문인협회 회장을 맡아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분들이야 내가 몇십 년을 진해문협과 함께해왔으니 인사치레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듣는 나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진해문협은 돌아가신 방창갑 시인, 황선하 시인과, 정일근 시인이 나와 함께 만들고, 고 김정환 아동문학가와 둘이서 1990년 ‘진해문학’지를 창간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진해문협의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온 나로서, 개성이 강한 문인들의 처세를 지켜봐 온 나로서, 자리 앞에서는 인연이나 정의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이나 봐온 나로서 어찌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청 시절부터 문학은 여기(餘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슴에 품었던 내가 진해문협의 많은 회원분들을 보면서 자꾸만 자신이 없어져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이 나를 가르치며, 깨우치게 하며, 공부하게 하는가. 이를 말할 수 없다면 문협이 무슨 소용이람. 이런 생각만 가득해져 단체 활동이 소원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회원들에게 무슨 감정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교사였던 나는 진실로 가르치면 진실로 배운다는 교육적 믿음을 갖고 있다.

    허점투성이인 내가 평생을 교직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른 타협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 애썼고, 가르치는 아이 하나라도 사람답게 키워보려고 힘써 왔기 때문이 아닐까.

    15세기 말 명나라 진헌장이 ‘백사자(白沙子)’에서 말했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 마르면 마신다. 가난하고 천하면 부귀를 사모하고, 부귀로워지면 권세를 탐한다. 궁하면 못하는 짓이 없고, 즐거우면 음란해진다. 온갖 짓을 온통 본능에만 따르다 늙어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 이런 것을 일러 짐승이라 해도 괜찮다고.

    나는 천생 소인이다. 작은 단체의 장(長)도 맡기가 두렵다.

    세상만사가 언제나 치세와 난세가 어울려 돌아가니, 하나같이 내세울 게 없는 내가 어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있겠는가. 이익을 좇아 살지 말고, 정의와 사랑을 좇아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월춘(시인·경남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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