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성산칼럼] 부모의 역할에 관하여-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1-04-14 20:19:48
  •   

  • 얼마 전에야 그 유명한 ‘응답하라’ 시리즈를 다 보게 되었다. 삐삐와 서태지와 아이들, HOT, IMF 장면을 보니 내 중·고등학교 시절과 20대 시절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실제 현실은 더 각박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1994년도 경남은 아직 ‘연합고사’라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이야 당연히 하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 무렵 창원시를 중심으로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실업고가 아닌 전통 있는 인문고가 마산, 창원을 통틀어 단 4개밖에 없어서 4개의 인문고에 들어갈 수 있는 연합고사의 컷 라인이 점점 높아진 것에 있었다. 4개의 인문고에 들어가야 속된 말로 ‘인 서울’에 있는 대학을 생각할 수 있었고 4개의 인문고에서 매해 10여명 남짓 명문대에 보내었기 때문에 그 연합고사의 컷 라인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덕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풍이 몰아쳐도 인문고 진학을 목표로 삼은 학생들은 컷 라인인 평균 90점을 넘기기 위해 매달 모의고사를 치며 실력 점검을 해야 했고 평균 80점대 후반대인 학생들 위주로 특수반이 꾸려져서 인문고 진학을 목표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쟁 구도 속에서 내 적성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심지어 본인조차도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점수를 올려 그 점수에 맞는 명문대 간판을 가지는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수능이라는 거사를 치른 이후에야 처음 알았다.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 그렇게 많은 대학이 있고, 그리고 익히 아는 대학이어도 그 대학 안에 그렇게 많은 과가 있다는 것을. 수능 점수를 받은 이후부터는 사실상 정보 싸움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서울에 있는 종합학원을 중심으로 각 대학의 각 과별 컷 라인과 입시 상담이 주로 이루어졌는데 그렇다 보니 지방 학생들은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 되는 입장에선 모든 것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입학 원서를 넣는 그 시점에서야 내 적성이 과연 무슨 과에 맞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과 원망만 쌓여갔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현재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가 되어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다시 접하면서 생각한다. 정말 교육제도가 문제일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학생들은 대학 진학, 그것도 인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 목표이고 최고의 목표는 명문대인 간판 그 자체이지 내 적성에 맞는 학교나 과가 아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유아기부터 선행학습은 시작되고 영어 유치원은 필수 코스가 된다.

    굳이 조국 사태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부모들이 대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실제 하지도 않은 스펙을 돈으로 사거나 만들어 넣고 시험과 다름없는 자소서 같은 글들을 대필시키고 대입을 앞두고는 컨설팅 업체를 끼고 명문대 진학을 노리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 왜냐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이쯤 되면 교육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싶다.

    그 어떤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도 편법을 만들어 내고 악용할 것이기에.

    무한 경쟁구도 속에서 입시를 치른 ‘응답하라’ 시리즈 세대의 부모들은 이미 알지 않는가. 내 적성조차 모르고 성적 내기, 명문대 간판 얻기에만 몰입한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더불어 명문대 진학이 바로 고소득 직업과도, 인생의 행복과도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기성세대가 모르는 직업들이 부지기수이고 앞으로 사라지고 새로 생겨날 직업은 예측조차 못하겠다.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 나라에서 대학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 같다. 모두들 공정한 사회를 바라면서 말만 할 뿐, 그 누구도 공정치 못한 행동을 먼저 그만두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노력한 수준에 맞춰서, 자기가 선택한 일들을 하며,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권리가 있고 부모들에겐 그것을 지켜볼 의무가 있다. 나보다 잘 될 것이란 기대가 아니라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으로 젊디 젊은 인생을 바라봐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로서 역할이 아닐까 싶다.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