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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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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잘못된 삶 소송- 조고운(정치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22-06-15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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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강원도 한 부부와 그들의 아이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부부가 양수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뒤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자, 산전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라며 해당 의사에게 양육비 등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미국 등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고, 법학자들은 이를 ‘잘못된 삶(wrongful life) 소송’이라 명명했다.

    ▼김영원 변호사는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이 소송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도 한때는 나의 출생을 손해라 느꼈을지 모른다. 장애아의 출생은 엄청난 의료비 부담, 주위의 낙인, 끝없는 돌봄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상징한다.(중략) 하지만 자녀는 다양한 경험을 농축한 채 고유한 인격체로 부모 앞에 등장한다. 이 ‘만나가는’ 과정에 장애아의 출생이 스스로에게 혹은 부모에게 손해인지 여부가 달린다. 친구, 가족, 이웃은 물론, 카페나 버스에서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과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모두 이 만남에 개입한다.’

    ▼지난 5월 30일 밀양에서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던 40대 어머니가 세상을 등졌다. 앞서 23일에는 서울에서 발달장애 아이와 40대 어머니가, 같은 날 인천에서는 중증 장애인 딸을 키우던 60대 여성이 목숨을 끊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3년간 이와 유사한 사례는 세상에 알려진 것만 18건에 달한다.

    ▼그들은 어떤 만남들로 채워진 삶을 살았을까. ‘불편한 시선과 무관심한 정부’라는 사회적 책임에서 떳떳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스로를 ‘잘못된 삶’이라고 느끼게 만든 ‘잘못된 사회’야말로 소송의 대상이 아닐까. 뙤약볕 뜨거운 6월 중순, 오늘도 경남도청 정문 앞 푸른 천막으로 세워진 ‘발달장애인 가족 사망 분향소’에는 눈물의 향이 태워지고 있다.

    조고운(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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