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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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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이명- 이우걸

  • 기사입력 : 2022-06-16 08: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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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지 않으려고 마개를 할 때가 있다

    많이 듣는 게 좋은 것만 아니어서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


    먼저 듣고 싶어서

    많이 듣고 싶어서

    곳곳에 귀를 대고 얻어 들은 소식들을

    대단한 전리품인 양 나눠주던 때가 있었다


    설익은 밥알 같은, 떫은 풋감 같은,

    그런 과거사를 귀는 알고 있다

    그리고 혼자 울면서

    자신을 닫으려 한다


    ☞ 평생을 시조에 몸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 이우걸 시인의 ‘이명’을 읽는다. 그만한 고뇌와 연륜이 아니고서야 그 깊숙한 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진언을 어찌 해독이나 할 수 있겠는가? 세상 한 어귀에 서서 잠시 귀를 닫아보는 일, 현대인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사방팔방 들리는 외침과 아우성과 불평불만을 이겨낸 귀, 흐느낌 같은 작은 원망도 숨죽여 들어낸 귀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로 잘 직조되어있어 앞섶을 여미게 한다. 이명의 나이, 그동안 말의 공해 속에 시달려온 우리들의 귀를 가만히 불러내어 위무하는 마음이 장마다 가득히 담겨 있다.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은 지방선거로 들썩였다. 거리마다 떠들어 대는 유세 차량 앞에서 유권자들이 귀를 틀어막았던 건 어쩌면 과도한 확성기 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 후보를 헐뜯는 온갖 네거티브와 터무니없는 말들로 그럴듯하게 귓속을 어지럽히고 마음을 흔든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공약을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돌아서야 할 때가” 한두 번일까? 정치인의 망언이야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만, 세상 일에 뒤처질세라 “먼저 듣고 싶어서/ 많이 듣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얻어들은 소식들을” 기세 좋게 우쭐대며 “나눠주던” 치기 어린 시절이 누군들 없었을까. 과연 귀가 들은 대로만 입으로 뱉었을까? 진실보다 부풀리고 포장한 현란한 말투로 누군가를 속이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는지도 모른다. 그 선명한 말 놀림의 “과거사를 귀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면 더 크게 귀는 우는 것이다. “혼자 울면서/ 자신을 닫으려” 하는 것이다.

    이남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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