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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꿀벌치기이다
꽃 따라 전국을 떠도는 양봉옹(養蜂翁)
4월엔 유채꽃 노랗게 물든 제주 바닷가로
5월엔 아까시 꽃 흐드러진 담양 병풍산에서
6월엔 때죽나무 꽃 알알이 핀 통영 사랑도
비닐 천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산새들과 잠이 들어도
세상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게 없는
나는 꿀벌치기이다
7월엔 밤꽃으로 수놓은 단양 흰봉산으로
8월엔 싸리꽃 낭창거리는 고성 건봉산 기슭에서
9월엔 들국화 향기 그윽한 여주 남한강 변(邊)
사십 평생 전국 산야를 떠돌아다니며
지도 같은 주름을 얼굴에 새기고
꽃 따라 웃는
나는 꿀벌치기이다
☞ 지구에서 벌의 개체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벌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라는 의미는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로서 생물의 다양성은 물론 생태환경에 중요한 화분매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자연환경 관련하여 물의 날, 바다의 날 등 -Day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심각성과 그 대안적 방안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위 시에는 꽃향기를 따라 제주에서 강원까지, 사십 평생을 이동식 벌치기로 살아온 시인의 근황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유월, 그렇다면 지금쯤 통영 사량도에 머물러 밤이면 하얀 때죽나무꽃 사이로 별을 헤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산 저 산을 떠다니며 벌통 놓는 곳이 고향이 되는 시인이야말로 진정한 벌치기 전문가로, 지도 같은 얼굴 주름은 사십 년 외길 인생의 뚜렷한 표징인 것이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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