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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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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60) 운인지전(耘人之田)

- 다른 사람의 밭에 김을 매다

  • 기사입력 : 2022-12-20 08: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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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월드컵이 마침내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끝났다. 월드컵의 열기는 언제나 대단하지만 꼭 20년 전 2002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컵 때와는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붉은 악마’의 응원 등 전국민의 너무나 열광적인 관심 속에 열렸다.

    2002년 6월 10일 오후 2시 한국과 미국 사이의 조별 경기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마침 필자가 지도교수로 있는 교육대학원 학생의 석사학위 논문심사가 그 시간에 잡혀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그대로 심사할 것입니까?”라고 물어왔다. 필자는 “당연하지요”라고 대답했다.

    6월 25일 한국과 독일 사이의 준결승전 경기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필자가 근무하던 경상국립대학교에서 한국한문교육학회 전국발표대회를 개최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필자는 부회장으로서 준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많은 회원들이 “그대로 개최할 것입니까?”라고 물어왔다. “당연하지요”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한문학 관계학회 등 여러 학회에서 월드컵 기간 중에 계획했던 학회를 모두 월드컵 이후로 연기하였다. “대세에 따릅시다” 하면서 연기를 건의하는 회원들이 많이 있었지만, 필자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연기를 요청하는 회원들에게 한 마디 했다. “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긍심(自矜心)을 가져야지 조그만 공 하나 가지고 노는 월드컵대회 한다고 학술대회를 연기한다면 한문학의 위상이나 가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월드컵대회 때문에 연기한다면 앞으로 올림픽 축구 결승전, 아시안대회 축구결승전 때도 학술대회 다 연기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무슨 학회가 되며, 무슨 학문이 되겠습니까?” 학술대회는 계획대로 진행했다.

    나중에 반응이 두 가지였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대단하다”라는 쪽과 “정상이 아니다” 등이었다.

    우리나라 팀이 준결승까지 올라간 2002년 대회라 다른 어떤 때보다 볼 만한 가치가 컸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할 일을 버려두고 경기를 관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구선수라면서 농구 연습이나 경기는 안 하고 유명한 축구대회만 관람하러 다닌다면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무슨 분야라 하더라도 자신의 본업(本業)을 가장 중시하고 거기서 자긍심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요즈음은 정보통신이 발전해서 볼 것 들을 것이 많아 좋은 점이 많다. 반면 자기 생각을 하고 자기 계획을 할 시간이 없다. 이것은 심각한 사고(思考)의 빈곤을 가져오고 전반적인 구도를 짜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필요한 정보통신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궁리하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문제점은 자기 밭은 버려놓고 남의 집 밭 매는 데 있다. (人病, 舍己田, 而芸人之田)”라고 했다. 정작 자기가 할 일은 팽개쳐놓고, 남의 일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따끔하게 경고한 것이다.

    * 耘(芸) : 김맬 운. * 人 : 사람 인.

    * 之 : 갈 지, …의 지. * 田 : 밭 전.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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