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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노산과 청라언덕- 하순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3-02-16 19: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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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일요일 대구의 근대골목, 동산의료원의 청라언덕에 갔다.

    우리가 아는 사실과 다르게 거짓으로 만들어져 있는 청라언덕을 직접 확인하며 안타깝고 통탄스런 마음이 들었다. 본래 청라언덕은 마산이 낳은 대문호 노산 이은상 선생의 ‘동무생각’이란 노래 1절의 배경으로 마산합포구 노비산 남쪽 언덕을 말한다. 작사 이은상, 작곡 박태준 전체 4절로 이루어진 이 노래의 1절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 네가 내게서 피어 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 노랫말이 지어진 1920년 겨울은 일제 치하였다. 나라의 주권이 완전히 사라진 시기였다. 노산 선생은 1919년 봄, 노비산 청라언덕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한 후 곧 연희전문에 입학한다. 1921년 3학년 봄, 가친의 건강악화로 마산으로와 다시 창신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친을 정성껏 간호하였다. 한편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박태준은 1921년 숭실중학교에 근무하다가 그해 가을 마산 창신학교로 이직, 두 사람은 한 직장에서 2년 동안 근무하는 인연을 가진다. 이때 박태준은 19세인 노산 이은상의 탁월한 면모에 감탄했다. 노산이 친구의 결혼식에 축시로 쓴 이 시를 함께 참석한 박태준이 듣고 너무 좋아 작곡을 하게 되었다. 창신학교 주변의 노비산이 청라언덕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박태준이 대구에서 근무한 것을 빌미로 발 빠르게 2009년 6월에 노래비를 세우고 청라언덕이라고 이름 지으며, 전국적인 관광상품이 되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금됐고, 해방과 함께 감옥에서 출옥한 항일 애국지사이다. 경남에서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홀대하는 사이 대구에서는 가짜 청라언덕을 만들어 작곡자인 박태준을 왜곡된 스토리텔링으로 미화시켜 놓았다. 노산 선생의 대표적인 옥중시조를 읽을 때마다 그분의 애국심이 절절히 느껴진다.

    평생을 배우고도/미처 다 못 배워/인제사 여기 와서/ㄹ(리을) 자를 배웁니다//ㄹ(리을)자 받침 든 세 글자/자꾸 읽어봅니다//제 ‘말’ 지키려다/제 ‘글’ 지키려다/제 ‘얼’ 붙안고/차마 놓지 못하다가/끌려와/ㄹ(리을)자 같이 꼬부리고 앉았소. -이은상 ‘ㄹ 자’

    대구에서 마산의 청라언덕을 훔쳐가 스토리텔링해 관광상품으로, 작곡자인 박태준을 미화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어도 정작 주인인 창원시나 경상남도에서는 이렇다 할 조치도 없이 14년이 흘렀다. 수십억의 예산을 들여 지었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고 사용해야 할 거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 시인이자 수필가, 시조시인인 조원기 선생께서 수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시간만 흐르고 있을 뿐이다. 소설가 이병주는 산하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이대로 세월이 가면 대구의 가짜 청라언덕이 온 국민에게 잘못 인식될 것이 염려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지역에서 선인에 대한 과오를 바로 잡아 모두가 함께 노래하며 사랑하는 내 아이들의 고향인 마산의 후인들이 서로 화합하여 행복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하순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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