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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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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남도청 창원 이전 40년, 뒷이야기- 김종부(전 창원부시장)

  • 기사입력 : 2023-03-01 19: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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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부산에 있던 도청이 경남 땅 창원으로 이전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4월 1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진 후 1963년 부산시가 정부직할시로 승격되면서 20년 세월 동안 더부살이를 끝내고 도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당시 부산 도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6·25전쟁 기간에는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되는 등 격변기를 겪기도 했다.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되고 도청이 부산시에서 더부살이 신세가 되자 이때부터 경남 땅으로 청사를 이전하자는 도민들의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방자치법(제6조)에서 도청소재지 결정은 도의회에서 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당시는 법률로 정하는 국회의 몫이었다. 1979년 국회를 대신하는 입법회의가 만들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1981년 3월 창원신도시에 도청을 두게 한다는 ‘경상남도 사무소의 소재지 변경에 관한 법률안’(제3426호)이 통과되면서 도청 이전의 발판이 마련되었고, 1981년 12월 건축공사 기공식을 가진 이후 1년6개월의 공사 끝에 1983년 7월 1일 창원 도청시대가 개막되었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국가재정능력이 빈약하고 어려웠다. 1983년 도 본청 재정규모는 일반회계 1464억원, 특별회계 123억억원을 합쳐 1587억원에 불과했다. 본청과 경찰국(그때는 도의 실·국 직제)을 합쳐 건축비가 217억원으로 계획이 되었는데 준공 시점에서 2억원의 추가예산 확보가 어려워 외벽에 돌 붙임을 하지 못하고 흰 페인트로 처리해 오늘날 ‘화이트 하우스’가 되었다.

    본관 뒤편의 송림원(松林園)은 당시 20개 읍, 200개 면에서 가져온 220그루의 소나무로 조성되었고 본청 현관입구 양쪽에 자리 잡은 황새모양의 소나무(4그루)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에버랜드산 기증목으로, 광장 정원의 느티나무와 모과나무들은 도내 기업인들과 유지들의 헌수로 심어졌다. 광장 동편의 연못(3350㎡)은 부곡하와이 창업자인 배종성 회장(창녕출신 재일교포 기업가, 작고)의 지원으로, 연못가 배롱나무(백일홍)는 합천댐 수몰지역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

    회의실에 걸려있는 4점의 사계절 그림(500호)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화 권위자인 일랑(一浪) 이종상(李鍾祥) 화백의 작품으로 럭키그룹 구자경 회장,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무학그룹 최위승 회장,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 4명이 기증했고, 통영출신 김형근 화백의 ‘한려수도’와 김창락 화가의 ‘고향의 봄’, 향토출신 조각가 문신 선생의 조각 작품 ‘화(和)’(울산 현대엔진 김영주 회장)도 기업인들의 기증으로 큰 재산 가치를 가지고 소장되고 있다.

    2012년 지방선거 당시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도청을 마산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도청 터를 매각해 1조원의 부채도 갚고 매년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거가대교와 마창대교 등을 인수하는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경남도청은 그때 공약 발표 11년이 지난 지금도 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 1번지(지번 주소)에 그대로 있다.

    이제 창원도청 시대도 벌써 40년 세월을 지나 장년으로 성장했고 경남도정은 ‘활기찬 경남 행복한 도민’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김종부(전 창원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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