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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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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배고픈 아이들- 이홍식(수필가)

  • 기사입력 : 2023-03-13 19: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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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밤늦은 시간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교육방송에서 다큐멘터리 프로를 방영하는 것을 보고 채널을 고정했다. 화면에는 필리핀의 어느 지역에선가 기아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방영하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국내 기독교 자선단체에서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가장 배고파하고 무엇이든 먹고 싶을 때인 오후 세 시에 문을 열었는데, 그 시간만 되면 어린아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한 끼라도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갈수록 많은 아이가 몰려들면서 자선단체에서는 순서대로 표를 주기로 했는데, 재정문제로 하루 250명밖에 표를 주지 못했다고 한다.

    길게 늘어선 아이들이 순서대로 표를 받고 들어가다가 표가 떨어지면 그다음 아이는 들어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는 돌려보내야 하는데 발길을 돌리며 뒤돌아보는 아이들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급식소 안으로 아이들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바로 앞에 선 아이까지는 표를 받아 들고 환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아이를 끝으로 문이 닫혀버린다. 그러자 못 받은 어린아이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덩달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마나 먹고 싶고 배가 고팠으면 저리도 섧게 울까 싶었다.

    세상 어디에나 배고픈 아이가 너무 많다. 자선단체의 선교사는 미국의 애완동물에게 먹일 사룟값만으로도 지구상에 있는 아이들을 배고픔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어느 한 곳이 부족하면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게 자연의 균형인 줄 알지만, 사람의 일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먹어야 하고 애완동물도 먹어야 한다.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순서는 사람이 먼저다. 누구에게 물어도 말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몸이 따르지 않고 말로만 하는 사랑이 얼마나 공허한 줄 알기나 할까. 요즘은 어딜 가나 애완동물 세상이다.

    이홍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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