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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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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빨간불-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3-03-28 19: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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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신호등, 다 같이 건너면 무섭지 않다.”

    1980년 이웃 일본에서 개그맨 비토 타케시(=영화감독 키타노 타케시)가 퍼트려 크게 유행한 말이다. 2012년 이웃 중국에서도 이 말(中式過馬路)이 크게 유행했다. 집단행동과 범법의 묘한 관계가 이 개그에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이 말은 그저 웃어넘기는 개그로 끝나지 않는다.

    이 말을 잣대 삼아 작금의 한국사회에 만연된 뿌리 깊은 병폐를 철학적으로 진단해 보자. ‘빨간 신호’라는 것은 ‘금지’라는 규칙의 상징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에는 그처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게 있다. 거짓말에서 도둑질, 폭행 등을 거쳐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 구체적 사례는 엄청나게 많다. 그 대부분이 아마 ‘형법’에 적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위험한 ‘나쁜’ 일이고 따라서 ‘처벌’의 대상이 된다. 표면상 모든 사람의 합리적 동의가 그것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 사회적 장치들로 인간의 ‘악’들이 어느 정도 걸러지고 일단의 평온이 유지된다. 그런데도 세상의 유치장은 범법자들로 넘쳐난다. 인간이 본래 절반 사악하니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연한 집단 범법이다. 빨간 신호를 다 같이 건너는 것이다. ‘다 같이’가 ‘빨간 신호’를 무력화시킨다. 범법을 정당화한다. 그러면 안 되지만 이게 통한다는 게 문제다. 저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실은 그런 경우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 ‘다 같이’가 어떤 부류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빨간 신호’가 무엇의 금지냐 하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 같이’는 분명 힘이 된다. 세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나쁜 세력’이 되는 경우다. 그런 세력은 도로를 무단 점거해 교통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고 확성기로 고함을 질러 소음공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고 끼리끼리 담합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고 부당한 거금을 나눠먹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다 같이’가 각양각색의 ‘패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 대표적 뿌리 중의 하나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 그것은 수출도 가로막는다. 패거리의 이익이 공익에 우선한다.

    그들에게는 ‘빨간불’의 의미 규정이 달라진다. 중국에서 유행 당시 나왔던 말처럼 ‘신호 같은 건 있으나 없으나 관계없다’가 되어버린다. 아니, 빨간불과 파란불이 반대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 같이’ 빨간불이 파란불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선악도 쉽게 뒤집혀 악이 악이 아니게 된다. 끼리끼리는 집단최면에 걸린 듯 실제로 그렇게 믿어버린다. 이게 우리의 아픈 현실이다. 다소 추상적인 말이지만 누구나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바로 짐작할 것이다. 병이다. 언어의 병이고 가치의 병이다. 한국사회의 발전, 특히 선진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철조망 바리케이드 같은 중병이다.

    패거리의 선 내지 정의가 범법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정의를 왜곡하면 안 된다. 그것이 국가의 발전, 선진화를 저해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패거리의 ‘입법’이나 ‘정책’이 그것을 저해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수결은 그 다수가 ‘어떤’ 다수냐에 따라 악을 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좌니 우니 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적인 이익이 기준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선, 정의,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게 철학이다. 철학은 그 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요즘 아무도 그것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으로 가는 우리의 길 앞에 지금 빨간불이 켜져 있다. 사회 곳곳에서 패거리를 모으는 종은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 종은 울리는가?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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