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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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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⑫ 통영 지도(紙島)

봄 깃든 종이섬엔 지나던 운무도 머물고
올망졸망 미더덕은 연신 봄향을 내뿜는다

  • 기사입력 : 2010-03-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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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시 용남면 적촌선착장에서 뱃길로 7분 거리인 지도(紙島)지도 전경. 섬 전체에 운무가 깔려 있다. /사진=경남도 항공 촬영/


    나은제씨가 지도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청정 미더덕을 들어보이고 있다.

    가야지 그래도 가야지

    바다로 가야지

    내가 가나 바다가 가지

    바다가 가나 배가 가지

    배가 가나 사리가 가지

    가야지 그래도 가야지

    바다로 가야지 배가 가나

    해가 가고 달이 가지

    해가 가고 달이가나

    세월이 가고 있지

    가야지 그래도 가야지

    바다가 가나 우리가 가지

    우리가 가나 욕심이 가지

    욕심이 가나 세상이 가지

    -차영한의 ‘종이섬’

    “뭐니뭐니해도 지도 미더덕이 최고지예, 입안에서 퍼지는 미더덕 특유의 향긋한 향과 톡톡 터지는 알맹이가 끝내준다 아입니꺼…!”

    따스한 봄바람에 윗옷을 벗어던진 섬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며 지도 섬마을 특산물인 미더덕 자랑을 늘어놓는다.

    통영시 용남면 적촌선착장에서 뱃길로 7분여 거리의 지도(紙島.146만434㎡·295명 126가구).

    조선 초기 옛 지명은 고성의 가장 동쪽 해역에 위치한 섬이라 하여 ‘종해도’(終海島)라 불렸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종이섬’, ‘종우섬’으로 변했고 이후 한자 지명인 ‘지도’로 명명(命名)됐다.

    민간 어원설에는 옛날 바다의 마고 할멈이 육지에 오르기 위해 여기에 종이(창호지)를 펼친 것이 섬이 되었다는 설과 옛날 조기가 많이 잡히던 곳이라 하여 ‘조기섬’이라 불리던 것이 와전돼 지금에 이르렀다고도 전한다.

    임진왜란 이후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도는 섬의 서쪽 해안 마을 ‘서부’(갈바지)와 큰 어장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거망’(걸맹이), 섬의 동쪽 해안 마을 ‘동부’(새바지) 3개 마을로 형성돼 있다.

    봄기운에 운무로 덮인 지도는 말 그대로 환상의 섬을 찾아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다.

    용남면 적촌선착장과 지도 서부마을을 오가는 ‘지도호’.

    적촌선착장에서 지도 서부를 오가는 지도호(선장 성동훈)에 몸을 실으니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배에는 3~4명의 섬주민들과 함께 가정용 LP가스통을 한가득 실은 트럭이 섬을 향한다. 한 달에 두 번(2·4째주 수요일) 섬을 오가며 섬사람들에게 가스를 제공하는 트럭은 용남농협가스(직원 송대기) 차량이다.

    트럭에는 마을별로 신청을 받은 가스와 여유분 등 45통의 가스통이 실려 있는데 서부마을과 거망, 동부마을을 돌아 섬사람들에게 가스통을 공급하고 나면 차량에는 빈 가스통으로 채워진다.

    송씨는 “마을 이장님이 ‘몇 시 배로 가스차량이 들어온다’고 방송을 하면 섬 주민들이 미리 빈 가스통을 손수레 등에 싣고 나와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현장에서 돈을 받고 가스통을 교체해 준다”고 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가스통이 귀하던 시절이라 급할 땐 섬사람들이 자기 배에 가스통을 싣고 나왔었는데 요즘엔 집집마다 가스통 2~3개씩은 여유로 보관하고 있어 월 2회만 방문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13면에 이어집니다

    지도호는 눈 깜짝할 사이 서부마을 선착장에 닿는다. 마을 입구에 서니 미더덕 양식장에 활용된 폐그물들이 마을 곳곳에 널려 있고 그곳에서 풍겨져 나오는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 마을에서 미더덕을 많이 생산하긴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나은제씨 부부가 미더덕 어장에 달라붙은 굴을 까고 있다.

    마을 선착장 앞 미더덕 작업장 뗏목에는 젊은 부부가 마주앉아 정겹게 굴을 까고 있다. 살며시 다가가 “섬에 굴이 많이 나오나요”라고 묻자 젊은 부부는 “미더덕 어장에 자연적으로 붙은 굴을 버리기 아까워 손질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부마을에서 미더덕 양식을 하고 있는 나은제(41)씨 부부는 이른 아침 바닷가에 나와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가지만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지도 미더덕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하다.

    나씨는 “청정해역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미더덕은 모두 맛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지도에서 생산되는 미더덕 맛이 일품이다”고 자랑한다.

    향이 독특하고 씹히는 소리와 함께 입안으로 번지는 맛이 일품인 미더덕은 열량이 매우 낮아 다이어트에 아주 효과적인 해산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폐그물을 활용한 미더덕 양식은 6월 초부터 8월 초까지 어장을 투입해 오만동이(주름 미더덕)는 9월부터, 미더덕은 이듬해 2월 중순부터 수확을 시작한다. 성수기는 4~5월이며 나른한 봄철 입맛을 돋우어 주는 최고의 음식으로 각광 받고 있다.

    나씨는 청정바다 통영에서 자라는 미더덕을 직접 보여 주겠다며 자신의 배(만수호)에 태우고 바다로 향한다. 작업장에서 5분 거리의 미더덕 어장으로 가는 푸른 바다는 온통 미더덕 양식장 부이(흰스티로폼)로 뒤덮여 그 규모를 실감케 한다.

    나씨가 도구를 이용해 길게 늘어진 밧줄을 하나 걷어 올리자 줄줄이 늘어선 폐그물에 올망졸망 매달린 미더덕이 연신 물을 내뿜으며 출렁인다.

    서부마을 어촌계원 23명 중 20명이 미더덕 양식을 할 정도로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미더덕 양식이 예년만 못해 어민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마을 이장 김기태(59)씨는 “올해 미더덕이 예년에 비해 많이 폐사해 생산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산진흥원 등 관계당국에서 폐사 원인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지도호의 운행시간에 맞춰 무료로 운행되는 마을버스는 서부마을을 출발해 거망마을을 거쳐 동부마을까지 해안로를 따라 3km구간에서 운행된다. 지도해안로는 신거제대교와 거제 본섬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감상할 수 있어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중간 기점인 거망마을은 평화로운 어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서부마을과 달리 자망어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은 봄 도다리 철을 맞아 이른 새벽이면 바다로 향한다. 거망마을은 섬의 유일한 교회인 ‘종이섬 교회’의 전도사인 윤경순(54·여)씨가 이장(통장) 직책을 맡아 3년째 수행하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윤씨는 2007년 1월 거망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섬마을에서 여자가 이장 직책을 수행하다 보면 어려운 점도 많지만 주민들이 마을 일이라면 모두가 자신의 일인 양 발벗고 나서 별 어려움이 없다”며 “섬사람들의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도시인들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거망마을에서 500m가량 더 걸으면 지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동부마을이다. 이 마을 역시 자망어업을 생계로 삼고 있지만 요즘엔 돈벌이가 영 신통치가 않다.

    마을 초입의 원평초등학교 지도분교는 전교생이 3명뿐인 자그마한 섬 학교다. 혜림(4년), 윤정(5년), 가원(6년)이는 작지만 아름다운 학교가 마냥 좋기만 하다.

    마을 중앙에는 보호수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버티고 섰다. 족히 수백 년은 된 나무는 마을의 수호신 격이다.

    지도 동부마을.

    동부마을 지양규 이장이 마을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팽나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마을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놀고 있다.

    동부마을 지양규 이장은 “예전 지도 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를 올렸는데 집집마다 제상을 차려놓고 마을 보호수 앞에서 제를 지냈고 마을 언덕 위 당산에서는 무속인을 모셔다 큰 상을 차려 놓고 한 해의 무사안녕과 만선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섬사람들이 점차 뭍으로 떠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명절이면 동부마을과 거망마을 산 언덕 화전암이라는 꽃밭등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나와 노래와 춤을 즐기는 풍습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30여 년 전 사라졌다고 한다.

    지 이장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논농사, 보리, 밭농사 등 다양한 농사를 많이 지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모두들 농사를 포기하고 어업에 종사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마을 공동우물을 지나 언덕 아래의 보건진료소까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여분, 마을 끝머리에는 굴 작업장이 있지만 소규모로 마을에 큰 소득이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주민들은 지도의 부속 섬인 ‘범섬’에 가족호텔 등을 갖춘 관광휴양섬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도선장 이용 등의 간접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범섬’은 육지인 용남면 장평리 견내량 선착장에서 3㎞, 은평리 적촌마을 선착장에서 2.6㎞ 떨어진 무인도로 인근 섬과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다.

    ◆가는 길

    원평 적촌선착장에서 지도를 오가는 도선은 하루 6차례(오전 8시40분·10시 40분·12시 40분, 오후 2시20분·4시20분·5시10분)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3000원이다. ☏동부마을 지양규 이장 010-4567-2439.

    ◆잠잘 곳

    거망마을과 동부마을 사이에 원룸형 테마하우스 민박집이 있다. ☏642-9994.011-556-3513.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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