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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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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⑬ 통영 어의도

햇살 반짝이는 은빛바다에서 갈매기들 인사하고
‘어의여차’ 어부는 노 저어 은빛 멸치 털러가네

  • 기사입력 : 2010-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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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해안로.

    어의도 섬 풍경.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갈길 바쁜 봄처녀의 발목을 잡는다.

    ‘어의여차, 어의여차…’ 검게 그을린 어부가 바다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섬의 형세가 바다 위의 배(船) 같아 배가 나아가기 위해 노를 저으면 ‘어의여차’ 소리를 낸다하여 불리어진 섬 ‘어의도’(於義島·42만 9772㎡·34가구 60여 명). 조선 초기 옛 지명은 어리도(於里島)였으나 어의도(於儀島), 어의도(於義島)로 변했다.

    섬의 지형이 허리가 잘록한 개미 모양을 닮아 ‘충의도(蟲義島)’라 불리기도 한 어의도는 크기가 비슷한 2개의 섬인 ‘큰 섬’과 ‘작은 섬’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섬 중앙에 사주(沙洲)가 발달하면서 두 섬이 하나로 연결됐다.

    통영시 용남면 내포마을에서 뱃길로 30여분 거리의 작은 섬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반기기라도 하듯 터줏대감 격인 갈매기들이 먼저 나와 인사한다.

    어의도는 1603년 고성군 춘원면에 속했으나 1900년 진남군 가좌면, 1914년에는 통영군 통영면, 1931년 용남면으로 최종 편입됐다.

    마을 부둣가 옆 양지바른 곳에서는 마을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녹이고 앉았다.

    바다에 떠 있는 멸치잡이 작업장.

    방파제 앞에 놓인 녹슨 닻들.

    어의도는 예전 부자 섬마을이었다. 지금은 걸그물(자망)과 건망(구역선 어장) 등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지만 30년 전인 통영군 시절, 어의도는 피조개 종패 사업으로 제법 큰소리(?)치는 섬마을이었다.

    마을 이장 김종택(68)씨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는 마을 앞바다에서 종패를 생산해 통영에서 소득 1위를 차지했고, 경남도로부터 저축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어의도 주민들이 인근 용남면 농협에서 큰소리를 칠 정도였으니깐 대단했죠”라며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지금은 섬주민이 60여 명밖에 안 되지만 그 당시는 집집마다 식구가 4~5명씩은 살았으니깐 마을 주민이 200명이 넘었어요. 그런데 피조개 종패가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섬마을에서 너도나도 종패사업을 시작하면서 결국 90년 중반 이후 어의도 주민들은 종패 사업을 접고 ‘건망’으로 눈을 돌렸어요”라고 말한다.

    섬마을 주민들은 이때부터 확연히 줄어들었다.

    “소득도 줄고 교통도 불편하고, 특히 아이들 교육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섬을 떠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어의도를 지키고 있어요”라며 허전한 마음을 애써 달랜다.

    주민들은 멸치잡이 ‘건망’이 피조개 종패 사업에 비해 큰 돈벌이는 되지 않지만 아이들 공부시키고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단다. 예전 멸치가 많이 잡힐 때는 처치 곤란이었을 정도란다.

    마을주민 양상준(75)씨는 “멸치는 잡은 지 5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상품가치가 있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잡히면 처치 곤란이야. 멸치는 시간이 흐르면 내장이 터져 상품가치가 없어지거든.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지. 그땐 마을 인심도 넉넉했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제 큰 욕심 없이 자연이 준 선물에 만족하며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단다.

    주 1회 섬을 찾는 급수선. 1회에 35t~45t가량을 마을 물탱크에 채우고 돌아간다.

    마을 경로당에 앉아 한참 동안 섬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마을 이장님이 갑자기 “급수선이 들어왔다”며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신다. ‘급수선?’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말에 얼른 뒤따라 나서니 동편 방파제에 정박한 하얀 배가 호스를 꺼내 부둣가 앞 물탱크 호스를 연결시키고 있다.

    주 1회 섬을 찾는 급수선은 1회 35t~40t가량을 마을 물탱크에 채우고 돌아간다. 마을에는 개인지하수 10개와 마을공동지하수 1개가 있지만 물맛이 간간하고 양이 적어 급수선에 의존하고 있다.

    김 이장은 “여름이면 주 2회 물을 채우고 물이 부족할 경우 전화로 연락을 하면 수시로 물을 채워줘 섬이라도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거의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다.

    어의도에는 우물과 관련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지금도 마을 중앙에 우물이 있지만 옛날엔 우물가에 아주 오래된 큰 구기자나무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뿌리에서 나온 약물을 먹고 키도 크고, 힘도 무지 셌으며 무엇보다 섬사람들이 장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1904년(갑진년) 태풍으로 구기자나무가 유실되면서 힘 센 장사나 장수하는 사람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폐교된 분교 한편에는 새롭게 단장된 건물이 들어서 있다. 태풍 매미 등 폭우와 강한 바람으로 산사태가 예상되자 2005년부터 3년간 방제사업을 진행하면서 일부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한 것이다.

    섬 중앙 물앙장 앞 공터에서 노부부가 4월부터 시작되는 건망 설치를 위해 배에서 어장을 내리고 있다.

    마을 경로당 앞 부둣가에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다.

    섬 중앙의 물양장 앞 공터에는 노 부부가 4월부터 시작되는 건망 설치를 위해 배에서 어장을 내리고 있다. 뭍으로 내려진 그물은 구멍난 부분 등을 손질하는 등 정비를 한 후 다시 바다에 설치될 것이다.

    섬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 마을 뒷길은 평화로운 어의도 섬 풍경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햇살에 반사된 바다는 은빛 세상을 연출하고, 바다 위 하얀 부이는 어민들에게 풍요로움을 전한다.

    마을 경로당 앞 부둣가에는 주민 서너 명이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다. 주민들은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오랜만에 섬을 찾은 외지인이 식사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에 괜스레 미안함을 나타낸다. 주민은 “예전 마을이 호황이던 시절엔 서로 구판장(매점)을 하려고 아우성이더니 지금은 마을에 구판장은 고사하고 구멍가게조차 하나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방파제 앞의 많은 녹슨 닻들이 풍요로웠던 지난날의 기억을 회상케 한다.

     

    ☞가는 길= 어의도는 통영에 속한 섬이지만 섬을 오가는 배편은 거제 사등면 성포에서 하루 두 차례(오전 7시30분·오후 3시30분) 운항하는 정기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잠잘 곳= 섬에는 따로 민박할 곳이 없어 마을이장께 부탁해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이용하면 된다. 마을이장 김종택 ☏016-370-8633.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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