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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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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17) 통영 수우도

깎아지른 절벽 아래 푸른 바다 넘실대고
세월이 빚어낸 기암괴석은 자태 뽐내네

  • 기사입력 : 2010-04-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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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박산 능선에서 바라본 수우도. 빼어난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준희기자/


    사량도에서 바라본 수우도.

    실은 아픔을 웃음으로 노저어 풀듯

    눈물보다 더 깊은 곳을 갈라내며

    안달이 나서 다시 그물을 칼로 끊어내고

    잇달아 낸 매듭 다시 보며

    내가 먼저 바다보다 소리쳐서 앞닻을 던져도

    가슴 한복판에 한바다가 있어

    한 생애의 밧줄을 다 주고도

    된살 되앗아잡고 사리고 사려도

    비탈길어 휘어잡은 나뭇가지처럼

    놓으면 사정없이 후려치는

    그 회초리로 하여 혼자 웃고 사는 늦날진 샛바람이여

    붙잡아도 비늘로 빠져 달아나며

    당신의 입가에서 이는 하얀 물살

    가르는 돛배 하나 보내와도

    오늘은 수평선 뒷닻을 던져놓아도

    정박은 오히려 구름밭으로 끌려가는

    먼저 알아서 비켜가는 적막

    밀물과 썰물의 맞물린 멱살

    안된다 안된다 이것만은 안됨을

    가로질러 막아서서 떼어도

    등뒤에서 헛웃음치는 또 하나의 세월이여

    아! 끄나풀 몇 가닥으로 하여

    이날 이직지 샛날로 가고 마는 참으로 무거운 짐

    털털 털고 일어설 수 있을까.

    - 차영한의 ‘섬’ 중에서

    빼어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동백꽃이 어우러진 섬 ‘수우도’(樹牛島·25가구·50명·128만4478㎡). 통영의 많은 섬들 중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섬 ‘수우도’는 나무가 많은 데다 섬의 생김새가 소와 같아 ‘수우도’라는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토박이 섬마을 주민들은 섬을 ‘시우섬’이라 부르고 있다.

    섬 전체에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으로도 불리기도 하는 수우도는 비옥한 땅과 인심 좋은 섬사람들이 함께 사는 은혜의 섬이다.

    행정구역상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에 속한 작은 섬이지만 이곳 섬사람들의 생활권은 대부분 사천권에 가깝다. 수우도는 삼천포항에서 불과 1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뱃길로 40여 분이면 이를 수 있지만 통영항에서 배를 탈 경우 2시간 가까이 소요되다 보니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더욱이 통영에서는 섬을 오가는 배편조차 없어 인근 사량도에서 배를 갈아탄 후 임시 배편을 이용해야만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수우도 섬여행은 통영 가우치 선착장에서 사량도를 오가는 사량호에 오른 후 섬에서 다시 임시 배편을 이용해 수우도를 찾는 방법을 택했다.

    사량도에서 뱃길로 20여 분(4km) 거리의 수우도. 섬에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자태를 드러내며 신비함을 더한다.

    수우도 동백나무 군락.

    고래바위

    멀리서 보면 바다 쪽으로 둥근 머리를 길게 내민 섬의 기암괴석이 마치 거대한 고래와 같아 이름 붙여진 ‘고래바위’는 금방이라도 머리에서 물을 내뿜으며 힘차게 바다로 나아갈 것 같은 형세다. 풍화작용으로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 괴이한 모습을 한 해골바위, 매의 부리처럼 날카로운 모습을 한 ‘매바위’, 직벽에 가까워 암벽등반가들이 자주 찾는 ‘신선대’ 등 거친 파도와 바람에 닳은 바위는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친 파도와 바람 탓에 방파제로 둘러싸인 마을은 요새처럼 견고하다. 산과 산골짜기 아래 움푹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 어귀에 앉은 한 부부가 볼락잡이용 통발을 손질하고 있다.

    해성호 선장인 김씨는 “요즘 볼락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것 같다”며 “그 많던 고기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요즘엔 볼락 1kg 잡기도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봄햇살에 얼굴이 그을리는 게 싫은 여인은 두건 같은 모자를 둘러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다.

    수우도 마을.

    볼락잡이용 통발을 손질하고 있는 주민.

    마을이장(서두리·61)은 수우도 젊은이들은 양식업으로, 나이 든 사람은 소일거리로 밭일 등을 하며 지낸단다. 예전의 많았던 논농사는 일할 사람이 없어 모두가 포기했단다. 넓지막한 골목길은 마을 사람들의 작업장이다. 집 앞 골목길에 그물을 펼쳐 놓고 손질을 하는 아낙네의 모습에서는 어촌생활의 고된 삶의 애환이 묻어난다.

    이장 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사량초등 수우도분교장은 2년 전 폐교됐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는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폐교된 수우도분교장은 마을에서 5년간 임대해 공동으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나름대로 깔끔한 운동장과 교실을 개조한 대형 숙소는 고요해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폐교된 수우도 분교장. 마을서 개조해 민박집으로 운영한다.

    마을의 수호신 설운장군의 사당 ‘지영사’.

    수우도 섬마을의 수호신 설운장군의 사당인 ‘지영사’(至靈祠)는 학교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족히 수백 년은 묵은 느티나무 아래 폭이 1m는 되어 보이는 돌담으로 에워싸인 설운장군 사당은 마을 주민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이장은 “마을 주민들은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설운장군의 사당에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며 “나쁜 짓을 하지 않아도 혹시나 벌 받을까 봐 잘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듯 마을 주민들이 신령스럽게 생각하는 설운장군의 설화는 어떤 내용일까? 마을이장이 들려주는 설운장군 설화는 대충 이렇다.

    아주 먼 옛날, 수우도에 자식이 없는 가난한 어부가 살았다. 부인은 매일 밤 정화수를 떠놓고 아이를 가질 수 있게 치성을 드렸고 마침내 아이를 갖게 됐다. 열 달 후 태어난 사내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두 배나 컸고, 첫돌이 지나자 혼자 바다에 나가 헤엄을 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잠자는 아들을 살펴보았더니 겨드랑이에 아가미가 있고 온 몸에 딱딱한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설운의 나이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당시 남해안에서 왜구들의 노략질이 극심해 백성들의 곡식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설운은 혼자 바다로 뛰어들어 왜구들과 싸웠고 빼앗은 곡식을 섬사람들에게 다시 나눠주었다. 두려움을 느낀 왜구들이 섬 가까이 오지 않고 아예 욕지도 쪽으로 빠져 나가자 설운은 큰 부채로 바람과 파도를 거세게 일으켜 조난시키는 신통력을 발휘했고 수우도와 사량도, 욕지도, 남해를 징검다리처럼 훌쩍 뛰어넘는 도술을 부리기도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왜구는 남해안에 반인반어(半人半魚)인 해괴한 괴물이 나타나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괴소문을 퍼뜨렸고, 소문을 믿은 조정은 괴물을 당장 체포하라는 명령을 욕지도 호주판관에게 내린다. 이에 설운은 어부들을 모아 관군에 맞서고 욕지도 호주판관 부인을 납치해 국도라는 외딴섬에 가서 살게 된다. 세월이 흘러 판관부인은 설운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는 탈출의 기회만을 엿보았다. 설운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한 번 잠이 들면 며칠씩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 설운이 깊이 잠들자 판관부인은 봉화를 피워 이를 관군에게 알렸고 급기야 생포당한다. 그러나 잠에서 깬 설운이 온몸에 힘을 주자 묶였던 포승이 끊겼고, 이에 당황한 관군들이 설운의 목을 내리쳤으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붙자 판관부인이 다시 한 번 더 내리 칠 것을 말한 후 잘린 목 위에 메밀가루를 뿌리자 그제서야 꿈틀거리며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그 이후로 마을주민들은 설운장군의 은혜를 잊지 않고 마을의 풍어와 안전을 함께 기원하며 매년 음력 10월 보름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마을에서 제주(祭主)를 구하기 힘들어 3년에 한 번씩 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걸린 시간은 대충 20여 분. 이번엔 마을 방파제 끝에서 출발해 은박산을 돌아오는 섬 일주 산행에 나섰다.

    수우도는 산이 험하지 않고 암벽과 능선으로 이어져 걷는 내내 산행길이 심심치 않다. 특히 은박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이 아름다워 트레킹 코스로 그만이다.

    마을 앞 방파제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산길로 접어들자 이내 울창한 숲으로 접어든다. 산에는 진달래꽃이 만개해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10여 분쯤 올랐을까,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무렵 갑자기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짙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모습과 저 멀리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사량도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바로 이 맛에 산행을 즐기는구나’ 탄성이 절로 쏟아진다. 동서로 길게 뻗은 암릉을 지나면 푸름을 더한 바다와 동백 군락이 다시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산행은 절정을 이룬다. 수직 암봉 끝에 서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식혀 준다. 넓게 펼쳐진 바위에 드러누워 떠가는 구름과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인기척에 놀란 염소들이 가파른 비탈길을 평지 달리듯 달아나는 모습이 가히 예술이다.

    아무도 찾지 않은 섬에서의 여유로움이 이렇게 평안하고 좋은지…. 1시간 30분 동안에 걸친 산행은 수우도의 몽돌해수욕장을 만나면서 마무리된다.

    ‘몽돌해수욕장’은 2003년 태풍 ‘매미’로 지금은 폐허로 변했지만 이곳은 예전 섬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었다.

    서 이장은 “예전 이곳은 마을부녀회에서 운영하던 횟집과 임시 그늘막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나 태풍으로 모두 유실되면서 낙담한 마을 주민들이 지금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몽돌해수욕장을 다시 운영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등 움직이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한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이장댁에서 오랜만에 찾은 외지인을 위해 수우도의 특산물인 물고구마를 특별메뉴로 내놓는다. 그 맛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가는 길

    수우도는 통영에 속해 있지만 배편은 사천 삼천포항에서 타야 한다. 삼천포항에서 하루 두 번(오전 6시30분·오후 2시30분) 섬을 오가는 일신호를 이용하면 된다.

    ☞ 잠잘 곳

    수우도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민박집은 깨끗하다. 미리 예약을 해야 숙박이 가능하다. 마을이장 서두리 ☏ 011- 883- 2218.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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