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
꽃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 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요즘은 딸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 낳으면 버스 탄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여권이 신장되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여자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끝순 막순 딸막 또순 서분 분녀…, 아들을 간절히 바랐는데 딸로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고 꽃 피우듯 처녀가 되고 여자가 되고 화수분 같은 사랑의 젖줄 퍼올리는 어머니가 되고 그 젖줄 자식들 춥고 배고플 때 꺼내먹으면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마침내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어머님 찬가가 천지사방 울려 퍼지는 봄날이 왔다. “빛나” “보배” “미애” “경애” “은혜” “근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봄날이 오고야 말았다.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