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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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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미래를 바라보기- 심윤경(소설가)

  • 기사입력 : 2022-02-10 2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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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어나 처음으로 달력에서 입춘이 언제인지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벌써 지나 있었다. 아직 영하의 날씨인데 입춘이 지났다니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앞서가는 기분으로 달력 앞에 섰는데 여전히 한참 뒤처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가오는 절기는 우수(雨水), 눈이 녹아 빗물이 된다는 시절이다. 어쨌거나 나는 달력에서 절기를 찾아본 이날을 기념비적인 날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드디어 미래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해본 성격 검사에서 제일 먼저 ‘과거 지향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듣기 좋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더 높이 쳐주는 쪽은 ‘미래 지향적 인간’이다. 한반도에 사람이 정착한 이래 언제나 올빼미형 인간은 아침형 인간에게 구박을 받았고, 대한민국이 공화국이 된 이후로는 언제나 과거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 지향적 시야를 가지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과거 지향적 올빼미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나는 언제나 무언가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과거 지향적 인간이다. 나에게는 이미 일어난 일만이 실체다. 미래에 대해서는 ‘어찌 될지 모른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예상하고 계획한다는 것을 무용하게 여긴다. 한 친구가 아이들의 교육비, 식비, 연료비, 통신비 등등을 생각하며 올해의 가정 예산을 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내 눈에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요술 램프를 문지르는 것처럼 신기하게 보였다. 내가 얼만큼 먹고 무엇을 할지 미래의 일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미리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하기 딱 싫어지는데.

    갑자기 스스로 미래 지향성과의 첫 만남이라고 뿌듯해하며 절기를 찾아보게 된 것은 내가 식물을 기르는 취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한 지는 어느새 2년이 넘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남들처럼 집안에서 즐길만한 취미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식물 가꾸기가 어느새 2년을 넘어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보자의 손에 맡겨진 식물들의 운명은 녹녹치 않았다. 화원에 있을 때는 싱싱한 모습이었는데 우리집에 데려오면 비실비실 앓거나 벌레가 생기고 곧 죽었다.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물이 죽는 것을 초록 다리를 건넜다고 부드럽게 표현한다.) 죽느냐 사느냐가 다급해서 식물의 모양이나 건강 상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3년 차가 되자 나의 식물들은 우리 집 환경에 적당히 적응한 상태가 됐다. 이제 식물이 죽을까 날마다 들여다보며 노심초사하는 초보 단계를 벗어나, 나는 드디어 미래를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사람 아이와 고양이들을 키워왔지만 그들은 미래를 생각할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하루하루 늙어가니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 아플 뿐이고, 사람 아이는 그저 예전에 예뻤던 모습을 떠올리는 게 최고라고 이미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었다. 식물 기르기야말로 미래를 생각하기 좋은 취미 생활이다. 시간이 흐르면 식물은 점점 커다래지는데, 무작정 물과 비료만 먹여 덩치를 키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식물이 어떤 형태를 가지게 해야할지 미리 계획하고 때를 놓치지 않게 가지치기를 해서 아름다운 수형이 되도록 유도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식물이 지금 비실비실하고 상태가 좋지 않아도 그것이 내 잘못 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식물의 상태는 당연히 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조차 모른 채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으므로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었다. 그것이 내가 달력에서 입춘을 찾아본 이유다. 예전에는 비실비실한 식물이 안타까워서 무작정 영양제와 물 세례를 퍼부었다면, 이제는 봄이 올 때까지 초췌한 시기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들이 지난 2년 동안 식물을 키우면서 배운 것들이다. 드디어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한가지 방법을 알게 됐다. 그것은 삶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가 되기도 한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수 있고, 그때까지 나는 남루한 시간을 조용히 견딜 것이다.

    심윤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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