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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⑤-1 백파선의 후예들- 김해 강길순 도예가

분청서 피어난 모란,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다

  • 기사입력 : 2023-10-16 21: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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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창시절 도예가 꿈꿔 결혼 후 김해 정착
    출산·육아 중에도 자기 만들며 꿈 키워
    2009년 공방 열어 경남공예품대전 도전
    2012년 ‘분청십장생반상기세트’로 대상

    이후 ‘모란 시리즈’로 브랜드 자리매김
    2020년 경남공예품대전서도 대상 수상
    “가치 있는 작품 위해  모란 더 신경쓸 것”


    ‘조선여도공’ 백파선의 궤적을 살피는 과정 속에서 부록으로 김해(백파선 고향 추정지)와 아리타의 한국 여성 도예가를 만나 이들의 작품세계를 알아본다.

    이들은 터전을 옮긴 여성 도예가로서 백파선과 맞닿아 있다. 이번 편에서는 이틀간 김해 도예가들을 다룬다.

    김해 진례에서 활동하는 강길순 도예가(52·예원요 대표)는 학창 시절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고 난 후 도예가의 꿈을 키웠다. 작품에서 젊은 도예가를 연기한 배우 ‘데미 무어’의 물레 차는 장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다.

    강길순 도예가가 김해시 진례에 있는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길순 도예가가 김해시 진례에 있는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타향살이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고향인 경북 봉화를 떠나 안동 가톨릭상지전문대 공예디자인과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물레 작업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국립서울산업대 도예학과로 편입해 깊이감을 채운다. 졸업 후에는 이천 사기막골 도예촌에서 강사로 일했는데, 1999년 결혼과 함께 김해로 오게 됐다. 남편 직장이 있는 양산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도자기 있는 김해가 끌렸다.

    공방 창업에 대한 열망은 예전부터 있었기에 김해로 오고 3개월 만에 ‘예원요’를 개점한다.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2년 뒤 찾아온 출산과 육아 앞에서 꿈은 잠깐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휴식기는 8년가량 이어졌다. 그동안은 여유가 될 때마다 집 한편 작업실에서 자기를 만들며 꿈을 키웠다. 2009년 다시 ‘예원요’를 열었을 때에는 온전히 자기에 힘을 쏟아냈다. 곧장 경남공예품대전에 도전해 은상과 동상을 연달아 받았다. 마침내 2012년에는 ‘분청십장생반상기세트’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다.

    2012년 경남도예품대전 대상작 ‘분청십장생반상기세트’
    2012년 경남도예품대전 대상작 ‘분청십장생반상기세트’

    강 도예가는 자신의 작품에 한국적인 분위기를 반드시 담아내려고 한다. 당시 십장생을 주제로 잡은 것도 이러한 신념에서 시작됐다. 이야기가 있는 그릇을 요구한 친오빠의 제안과 십장생 문양을 찾아 준 남편의 도움도 컸다.

    하지만 이후 십장생 세트를 상품화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거북이, 학 등 동물이 그려진 그릇을 생활자기로 쓰기에는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십장생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니 모란이 떠올랐다. 한복에 새겨진 핑크색, 하늘색 모란꽃이 한국적이라 느껴졌던 것이다. 모란은 부귀영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2013년 분청도자기축제 때 모란을 그린 잔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후 다양한 시리즈로 확장시켰다. 현재는 모란은 강길순 도예가의 아이덴티티(정체성)로 자리매김했다. 모란 시리즈는 어느덧 30가지에 달한다.

    2020년 강 도예가는 모란을 주제로 한 ‘봄이 오는 소리’로 다시 한번 더 경남공예품대전 대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모란과 함께 상감기법으로 디자인한 분청사기 세트다. 그해 두 달 정도 온전히 힘을 모아서 만든 작품이다.

    2020년 경남공예품대전 대상작 ‘봄이 오는 소리’
    2020년 경남공예품대전 대상작 ‘봄이 오는 소리’
    ‘모란이 새겨진 책거리 항아리’.
    ‘모란이 새겨진 책거리 항아리’.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첫 대상작이 아닌 2020년 대상 작품이다. 지난 10년간의 노력으로 이제는 자신의 브랜드가 된 모란으로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업(도예)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는 모란을 주제로 작품과 상품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모란이 새겨진 ‘책거리(책이나 종이, 벼루 등 문방사우를 그린 그림)’를 담은 자기에 도전하고 있다.

    백파선 시대와 달리 도예활동을 하는데 여성으로서의 겪는 어려움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전문적으로 배운 젊은 여성 도예가들이 늘면서 자기 색깔이 강한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1999년 김해에 왔을 때 김해도예협회에 여성은 강 도예가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80여 명 중 20여 명까지 늘었다.

    앞으로의 다짐을 묻자, 강 도예가는 도예가로서 남아있는 수명을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길어도 10~20년 정도 더 자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어느 누구도 가치 있는 작품이라 느낄 수 있도록 모란 한 송이마다 조금 더 예쁘게 신경 써서 만들고 싶어요.”

    글·사진=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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