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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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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⑥ 백파선을 기억하는 아리타

‘백파선갤러리’·행정기관 합심 ‘아리타 도업 어머니’ 알려

  • 기사입력 : 2023-10-19 21: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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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직후 일본에 끌려간 백파선은 남편이 사망한 후 일가를 이끌고 아리타(有田)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도공들을 이끌며 도업을 발전시킨 그는 훗날 ‘아리타 도업의 어머니’라 불리게 된다. 아리타는 오늘날 세계적인 도자기 마을로 성장했다. 마을은 백토를 최초로 발견한 조선도공 ‘이삼평’을 중심으로 도업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백파선은 비교적 최근에야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번 편에서는 일본으로 넘어가 아리타 마을에서는 백파선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아리타는 사가현의 인구 2만여명인 마을
    1616년 이삼평이 일본 최초로 백자 생산

    ‘백파선갤러리’ 2016년 구보다 관장이 개관
    갤러리·게스트하우스 구성, 전시 등 열려


    아리타에 있는 ‘백파선갤러리’에 한국과 일본의 여성 도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아리타에 있는 ‘백파선갤러리’에 한국과 일본의 여성 도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백파선 알리기 앞장선 ‘백파선갤러리’= 아리타역에서 동쪽으로 7분가량 걸으면 도로 양 옆으로 도자기 가게들이 이어진 거리가 나온다.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첫 건물 간판에서 익숙한 한글이 보인다. ‘갤러리 백파선’. 작은 단층짜리 건물은 아리타에서 백파선 알리기에 가장 힘쓰고 있는 곳이다.

    백파선갤러리는 지난 2016년 개관했다. 갤러리 개관에는 구보다 히토시(74) 관장의 의지가 컸다. 아리타에서 태어난 그는 오래전부터 김해 인제대 학생들과 명절 홈스테이 체험 등 교류를 해왔다. 그러던 중 2013년 백파선의 고향이 김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이 길이 ‘운명’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는 “이삼평에 가려져 있던 백파선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지난 12년간 아리타의 정(町)의원(우리나라의 군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백파선 선양을 위한 다양한 기획을 했고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백파선갤러리는 갤러리와 게스트하우스로 구성돼 있다. 갤러리는 한일교류를 통해 백파선의 정신을 널리 알리겠다는 방향으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은 총 8명의 한국과 일본의 여성 도예가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김해의 방’과 ‘백파선의 방’ 등 2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게스트하우스 앞에는 지난 2018년 한국도예협회 내 백파선기념사업회가 전달한 ‘백파선기념상’이 놓여져 있다.

    일본 아리타에서 2016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백파선갤러리.
    일본 아리타에서 2016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백파선갤러리.


    봄·가을 ‘아리타도자기축제’ 관광객 100만
    게스트하우스 등 숙소 두 달 전 예약 완료

    아리타 정, 이삼평·백파선 유적지 등 담은
    관광가이드북 제작해 방문객에 배포

    백파선 첫 가마 열었던 ‘히에코바 가마터’
    안내판에 ‘아리타 도자기 선구자’로 소개


    ◇아리타 속 백파선= 아리타는 행정구역상 ‘사가현 니스마쓰우라군 아리타 정(우리나라의 ‘읍’에 해당)’에 해당하는 인구 2만1000여명의 소규모 마을이다. 1616년 조선도공 이삼평이 이즈미산(泉山)에서 도석을 발견해 일본 최초의 백자 생산지가 되면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조용한 마을이지만 봄(4~5월)과 가을(11월)마다 열리는 ‘아리타도자기축제’ 기간에는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북적거린다. 오는 11월에도 가을 축제가 예정돼 있는데 백파선 게스트하우스 등 숙소는 두 달 전부터 예약이 가득 찼을 정도다.

    아리타 정에서는 관광 가이드북을 제작해 배포하는데, 한글로도 번역돼 만들어진다. 해당 가이드북에는 이삼평과 함께 백파선을 소개하고 있다.

    ‘아리타의 시작’란에서는 “사가현 내에서는 다케오의 후카우미 소덴(심해종전)과 백파선 일족이, 다쿠에는 이삼평과 그 일족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 양질의 도석을 구하고자 영토를 탐험하며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또 주요 유적지로 백파선과 관련이 있는 ‘백파선의 법탑’과 ‘관음산 제례묘’를 소개한다.

    구보다 관장과 함께 두 유적지를 탐방했다. 먼저 방문한 백파선의 손자가 보은사(호온지) 경내에 세운 ‘만료묘태도파의 비(백파선의 법탑)’는 비문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했다. 비석 아래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두고 간듯한 100원짜리 동전 몇개가 놓여 있었다.

    백파선이 아리타에서 처음 가마를 열었던 ‘히에코바 가마터’ 안내판.
    백파선이 아리타에서 처음 가마를 열었던 ‘히에코바 가마터’ 안내판.
    아리타 ‘관음산 제례묘’. 이삼평·백파선 가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세웠다는 설이 있다.
    아리타 ‘관음산 제례묘’. 이삼평·백파선 가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세웠다는 설이 있다.

    ‘관음산 제례묘’가 있는 보은사 뒷산(관음산)을 오르는 길목에서는 백파선이 아리타에서 처음 가마를 열었던 ‘히에코바 가마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내판에는 일본어와 영어로 “해당 가마는 아리타 도자기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백파선과 관련이 있다”고 소개돼 있다.

    히에코바 가마터를 뒤로하고 관음산을 오르자 정상 부근에서 ‘관음산 제례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제례묘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삼평(가나가에) 가문과 백파선(후카우미) 가문을 중심으로 명절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세웠다는 설이 있다. 비석 왼쪽 편에서 ‘深海(심해, 후카우미)’란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심해는 백파선의 고향으로 김해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뷰/ 구보다 히토시 백파선갤러리 관장

    “갤러리는 아리타와 한국 잇는 장소
    한국 유명 아티스트 콘텐츠 만들어
    일본 젊은세대에 백파선 알려지길”

    구보다 히토시 백파선갤러리 관장
    구보다 히토시 백파선갤러리 관장

    -아리타에서 백파선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과거에는 후카우미(심해, 深海) 성을 쓰는 사람들의 조상이 조선인인 건 알았지만 백파선과 관련된지는 몰랐다. 꽤 오랫동안 조선도공은 이삼평만 알려져 있었다. 2016년 갤러리를 개관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이제는 많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도자기가 태동할 대 이삼평 이외에도 다른 조선도공이 있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갤러리가 앞으로 어떤 장소가 됐으면 하는지.

    △아리타와 한국을 잇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아리타 안에서는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백파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단 한 명의 주민이라도 백파선을 보는 시각이 넓어지기 위해 전문가 등을 모셔서 주민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한국, 그리고 김해와의 교류는?

    △갤러리를 개관할 때부터 꾸준히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도예협회와 함께 한일 백파선기념사업회를 운영했고, 김해의 도예가들이 아리타 도자기축제에 참가하는 등 김해시와도 교류하고 있다. 지난 3월에도 김해 상동면 대감마을을 방문해 한일도자교류포럼 등에 참가했다.

    -백파선이 오늘날 사회에 주는 의의는.

    △평화라고 생각한다. 전쟁의 피해자인 백파선은 도자기를 빚으면서도 전쟁이 반복되지 않길 염원했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 조선도공 등을 약탈했던 역사가 담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역사를 백파선을 통해 알리면서 일본이 반성하고 역사 인식을 깊게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보내온 ‘백파선기념상’을 ‘백파선평화기념상’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러한 이유다.

    -백파선을 알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문화를 활용하고 싶다. 한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이 백파선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한류를 타고 일본의 젊은세대에게 백파선이 알려지길 바란다. 젊은세대 간의 교류로 이해와 공감의 에너지가 발산되면 평화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사진=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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