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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발언대] ‘4·19혁명’ 아닌 ‘4월혁명’- 김용락(사회부)

  • 기사입력 : 2024-04-22 19: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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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대한민국 헌정 이래 유일한 혁명으로 기록된 4·19혁명도 그렇다. 4·19혁명은 목숨 바쳐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민중들이 쓴 위대한 승리의 기록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이 나라의 정신적 기틀이 되고 있다.

    오늘날 1960년 봄의 민주화운동은 4·19혁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앞서 3월 15일과 4월 11일 마산에서 있었던 시위는 4·19혁명의 ‘원인’이자 ‘발판’이며, 4월 19일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는 4·19혁명의 ‘전국적 확산’이란 형식이다.

    4·19혁명은 초창기 ‘4월혁명’으로도 불렸다. 실제로 지금도 영문으로는 ‘April Revolution(4월혁명)’이라 쓰인다. 두 명칭은 혼동해서 불리다가 문민정부 때 4·19혁명이 정식명칭으로 인정받는다.

    두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천지 차이다. 4·19혁명은 좁게는 1960년 4월 19일 서울에서 일어난 이승만 정권에 대항한 시위로 해석된다.

    4월혁명은 상당히 넓은 의미다. 1960년 4월 전후 전국적으로 일어난 이승만 정권에 대항한 시위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민중이 부패 정부를 이겨 혁명이 됐다. 그리고 서울이 지방을 이겨 ‘4·19’가 됐다. 오늘날 역사는 넌지시 말한다. 대한민국 유일의 혁명이 시작한 곳은 서울이라고.

    ‘4·19’라는 명칭 아래에서는 부정선거에 반발해 마산 시민들이 일으킨 시위와,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처참한 모습으로 떠오르자 분노했던 행동은 혁명에 영향을 미쳤을 뿐 혁명이 아니다.

    그해 3월부터 4월까지 부산, 대구, 경북, 인천, 수원, 대전, 충북, 강원, 전북, 광주, 전남, 제주 등에서 시민들이 이승만 하야를 외쳤던 것도 혁명이 아니다.

    1960년 6월 25일 마산일보(현 경남신문)는 1960년 3월부터 6월까지의 혁명을 기록한 책 ‘민주혁명 승리의 기록’을 펴냈다.

    당시 김형윤 사장이 발간사에 남긴 말이 있다. “제1차 마산의거를 시발점으로 한 4월 민주혁명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폐허 위에서 내각책임제 신헌법 제정을 고비로 위대한 역사적 전환을 촉진했다.”

    4·19혁명과 4월혁명. 당신은 어떤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가.

    김용락(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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