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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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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엄마라는 이름으로- 홍미옥(도슨트)

  • 기사입력 : 2024-04-23 19: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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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신 부모 밑에서 자라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 뭔지 모른다. 한 반에 70~80명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 무한경쟁에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이다. 여자인 나는 직장보다는 결혼이 더 행복한 삶인 줄 알았다. 남편 뒷바라지, 자식 교육, 시부모 봉양, 화목한 가정을 위해 현명한 주부가 되고자 했다. 내 나름 노력했지만, 남편은 늘 화가 나 있고 시부모님은 더 많은 걸 바라셨고 자식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불만이 가득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보인다.

    현모양처가 최종 목표인 내 삶은 완전 실패인 것이다. 더 이상 내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 가족은 나를 지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남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까? 내 주위 친구들은 거의 종교를 갖고 있다. 모든 건 내 탓이고 어떤 모습이라도 지금에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큰소리칠 수는 없겠지만 다 내 탓이라고 말한다면 슬프고 억울하다.

    다른 성향의 남자와 맞추려고 참고 사는 것도 그의 화를 받아내는 것도 고단했다. 잘 키워보겠다고 내 부모한테는 받아보지 못한 기회들을 많이 주고자 했던 나의 노력이 자식에게는 부담이고 고통이었다니…. 너무 마음 아프다.

    대학 입학이 전부인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경쟁에서 실패하면 엄마가 잘못 키운 탓이다. 자식 성공은 엄마의 전부이니 그 책임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법륜 스님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게 부모 자식이고 전생의 인연이라고 말한다. 이 모두가 본인의 업보라면 인연을 안 만들어야겠네.

    지금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족 형태는 엄마의 일방적인 희생 없이는 이어갈 수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는 참고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세뇌가 된 사회다. 엄마라는 굴레 안에 여자들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받아 왔다. 이제 여자도 똑같이 교육받고 직장생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더 이상 여자의 희생을 담보 잡을 순 없다. 출산과 육아는 고귀한 일이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한책임을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삶을 미리 다 봤기에.

    홍미옥(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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