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문학의 위기'? '위기의 인문학'!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인문학 전공 학과들은 대학의 통폐합 우선 순위로 내몰리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이공계의 반이 되지 않는다. 한 때 대학교를 진리 탐구와 학문 연구의 ‘상아탑’이라 불렀던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미 우리들의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대학교로 변모되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대학생들은 넘쳐나니 취업이라는 전쟁에 뛰어든 그들에게 인문학이란 흔히 말해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속도와 경쟁만이 일방 통행하는 성과주의 현대사회에 깊이와 가치를 이야기하는 인문학이 위태로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실은 가격표가 붙여진 ‘빵’을 요구하는 데, 인문학은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니 그렇다. 理想은 멀고 생존은 바로 눈 앞의 현실인 것이다.
현대사회의 구조의 변화는 인간 사회를 점점 더 생존 경쟁이 치열한 밀림과 유사한 곳으로 만들어간다. 너무나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해가는 시대에 신경을 곤두세워야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처럼 먹이를 먹는 동시에 다른 경쟁자로부터 자신의 먹이를 지켜야하며,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하며, 동시에 자식들도 감시하고, 또 배우자 상대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한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방향성을 잃은 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린다. 얼마나 분주한가! 하지만 방향성없는 분주함이란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재생하고 가속화할 뿐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은 ‘욕망’이다. 성과사회의 성과주체인 우리는 자유라는 미명아래 욕망의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기계의 태엽이 마모되어 가듯 우리의 영혼도 마모되어 간다. 세상의 속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세상의 기준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우울은 심각한 수준이다. ‘인간의 위기’인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지금 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관련 책이나 강의에 열광하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그것은 길을 잃은 사람이 다시 길을 찾으려하는 모습이다. 욕망의 방향없는 분주함에 지쳐 피로한 그들이 인문학을 통해 ‘영혼의 자양분’을 섭취하려는 것이다.
인문학이 ‘인간의 위기’에 좀 더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줘야 한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인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소위 상아탑 안의 인문학, 그들만의 인문학에 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래된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다시 거리로 나와 위기의 인간들을 쳐다 보아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위기’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시대의 위치를 읽어내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시대의 패턴을 읽어내고 진단해 준다면, 우리의 과거로부터 흘러온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고 우리의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통찰력을 가지고 제시해 준다면 인문학은 다시 설 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보면 인문학이 위기 아닌 때가 있었던가? 인간이 위기 아닌 때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인문학의 위기 해결책은 바로 ‘인간의 위기’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는 오독(誤讀)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위기의 인문학’인 것이다.
이정수 농협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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