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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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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진 기자의 라오스 봉사 동행 취재기

희망풍차 청소년 멘토링 봉사활동
땀과 눈물로 싹튼 인연의 씨앗 ‘희망 나무’로 자랍니다

  • 기사입력 : 2015-01-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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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CY 단원들이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콕사초등학교의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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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들이 돈하이-탕콕 유치원 야외학습장 바닥 콘크리트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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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단원이 야파초등학교 아이에게 학용품이 든 우정의 선물상자를 건네고 있다.



    경남·울산·전남·광주·제주서 모인

    고교생·대학생 RCY 단원 45명 참여

    수도 비엔티안 외곽 돈하이 마을 찾아


    작열하는 태양 아래 흙먼지 맞으며

    야외학습장 콘크리트 작업·페인트칠

    땀으로 흠뻑 젖어도 노래하며 서로 격려


    홈스테이하며 화장실 등 불편 많았지만

    현지 가족 따뜻한 배려에 금세 마음 통해

    짧은 만남 뒤로하고 이별 땐 뜨거운 눈물


    연유를 듬뿍 넣은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문 밖에 놓인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두운 밤이 찾아오자 도시의 화려한 조명 대신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사방을 둘러싼 고요함 덕분인지 복잡하게 엉켜 있던 마음의 실타래가 일순간에 풀리는 듯했다. 인위적인 것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순수한 사람들이 함께 느리게 호흡하는 곳, ‘몽상가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라오스. 그러나 이곳은 1인당 GDP가 1679달러(2014년 기준)인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18일부터 25일까지 경남, 울산, 전남·광주, 제주에서 모인 45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RCY 단원들이 라오스 현지 저소득층 아동과 주민들을 위해 벌인 ‘희망풍차 청소년 멘토링 봉사활동’에 동행했다. 언어가 달라도 마음이 통하는 데는 따뜻한 눈빛과 작은 미소만으로도 충분했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 6박8일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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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만에 다시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19일 라오스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붉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1시간 정도 달려 외곽지역에 위치한 돈하이 마을의 돈하이-탕콕 유치원·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넓은 운동장에 줄 지어 서있던 아이들은 꽃으로 엮어 만든 목걸이를 단원들에게 걸어주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처음 찾은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해 분위기를 살피던 기자와는 달리 몇몇의 단원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포옹을 하기도 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한 단원이 “지난해 홈스테이를 했던 집의 가족들이다”고 소개했다. 이곳은 지난해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가 방문해 유치원을 증축하고 내·외부의 페인트칠 작업 등을 했던 곳이다. 대학 RCY 단원 중 몇몇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돼 꼭 1년 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올해는 비가 와도 바깥에서 공부할 수 있는 야외학습장을 새로 짓고, 유치원 개·보수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야외학습장 바닥 콘크리트 작업을 하기 전 터를 돋우기 위해 흙을 옮기는 작업부터 했다. 중장비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금세 끝날 일이었지만, 흙을 옮길 도구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단원들은 바구니와 포대자루를 이용해 흙을 날랐다. 바쁘게 움직이는 단원들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함께 도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작업을 하다 보니 몇 차례 오가지 않았는데도 금세 허리며 다리가 아파 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힘든 내색을 하기는커녕 노래를 부르고 연신 “파이팅!”을 외쳐 가며 서로를 격려했다.

    한창 작업에 몰두해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작업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단원들과 함께 흙을 옮겼다. 단순히 재밌는 놀이쯤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유치원 야외학습장을 짓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누구 하나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도 척척 일을 해냈다.

    이곳에서의 작업은 사흘간 이어졌다. 단원들은 야외학습장 바닥 콘크리트 작업을 위해 시멘트 가루와 모래, 자갈을 섞는데 먼지가 날려 계속 기침을 해댔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삽질을 무한 반복했다. 밤늦게까지 계속된 작업 끝에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일들도 하나둘씩 마무리돼 갔다. 어느새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단단한 바닥이 만들어졌고, 비를 막아줄 널따란 지붕도 생겼다. 단원들은 세워진 한 쪽 벽면에 물감을 묻힌 손바닥을 찍어 ‘KOREA RCY’라는 글자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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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들이 돈하이-탕콕 유치원 야외작업장 바닥 작업을 위한 자갈을 나르고 있다.

    ◆새로운 인연, 또 다른 희망의 씨앗 심기

    돈하이 마을에서의 봉사활동이 끝난 뒤 단원들은 마을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콕사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올해 처음 찾은 이곳은 경남지사와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학교다.

    라오스, 특히 외곽지역에 있는 학교들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수년 전 일본 등 해외의 지원을 받아 겨우 학교를 세우긴 했지만, 학교가 세워진 뒤 자연스레 지원은 끊겼고, 높은 비용 탓에 개·보수 작업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남지사는 앞으로 콕사초등의 개·보수 작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단원들은 대학RCY 단원들의 진두지휘 아래 작업을 시작했다. 며칠째 계속된 작업으로 많은 단원들이 근육통을 호소했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파스 뭉치는 이미 동난 지 오래.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채 단원들은 페인트 붓을 들었다. 낡은 페인트를 벗겨내고 하얀 페인트를 덧칠했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옷이며 팔다리 여기저기에 페인트가 잔뜩 묻었다.

    낯선 이방인들이 학교에 잔뜩 모여 있는 것이 신기했던지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이 잔뜩 모여 단원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봤다. 몇몇 단원들은 풍선으로 강아지와 꽃 등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즉석에서 레크댄스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쏨땀(파파야 등을 넣어 만든 동남아식 샐러드)을 만들어 단원들에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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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어보이는 라오스 아이들.

    ◆“잊지 않고 찾아줘 고마워요”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23일, 단원들은 비엔티안 시내에 있는 야파초등학교를 찾았다. 경남지사가 라오스와 첫 인연을 맺은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야파초등학교 완팽 교장은 단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완팽 교장은 “올해로 벌써 3년째 경남지사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렇게 또다시 만나게 돼 아주 반갑고 기쁘다”면서 “RCY단원들 덕분에 아이들의 학습 환경이 많이 나아졌고 학생 수도 늘었다”고 했다. 지난 2012년 경남지사와 당시 RCY 단원들이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낡은 지붕에서는 물이 새 비가 왔다 하면 책이며 교구가 모두 흠뻑 젖었고, 벽에 칠해 놓은 페인트는 곳곳이 벗겨지고 떨어져 지저분했다. 하지만 2년여에 걸친 보수작업을 벌인 끝에 이제는 상황이 꽤 나아졌다.

    완팽 교장은 기자의 손을 RCY 단원들이 꾸며준 도서관으로 잡아 이끌었다. 한쪽 벽면에는 단원들의 봉사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벽화를 담당했던 손광호(24·경남대 3년) 단원은 “아이들도 여전히 밝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고 작년에 그렸던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올해 단원들은 학용품 등이 담긴 우정의 선물상자를 나눠주고, 고무동력기를 함께 만들어 날리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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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들이 마을주민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서로의 진심 확인,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돈하이 마을에서 머물렀던 3박4일간 단원들은 라오스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기자 역시 맑은 눈망울을 가진 오이(10)네 집에 머물렀다. 어느 정도 각오를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욕실에는 샤워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대신 욕실 한편에는 물을 받아 뒀는데 바가지로 이 물을 떠서 씻어야 했다. 어디에다 발을 올려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변기에 볼일을 보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이 물을 퍼다 직접 흘려보내야 했다. 전진연(16·창원경일여고 1년) 단원은 “집에 있을 때는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씻는데, 찬물을 몸에 끼얹은 순간 ‘악’소리가 절로 나왔다”면서 “그래도 3일째 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고 했다.

    홈스테이 가족과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힘들었다. 온갖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야만 겨우 어렴풋이 의미를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근 사원에서 탁발을 하러 가는 단원들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이웃집에서 전통의상을 빌려 사원으로 한달음에 가져다주기도 하고(여성들은 긴 치마 형태의 전통의상을 입지 않을 경우 탁발에 참여할 수 없고, 사찰 출입도 제한을 받는다), 지난해 김상하(21·마산대 3년) 단원이 머물렀던 홈스테이 가족들은 라오스에서 생일을 맞은 단원을 위해 미리 준비한 케이크를 선물했다.

    나흘간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단원들은 정이 든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가지고 온 과자며 비타민이며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꺼내줬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함께한 시간이 길든 짧든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주민들과 단원들은 말없이 서로 껴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한 채.

    글·사진= 김언진 기자 hop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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