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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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39) 통영 봄날의 책방

책과 문화, 쉼이 있는 ‘따뜻한 동네책방’
서울 살던 강용상·정은영 부부 요양차 통영 내려와
2011년 출판사 ‘남해의 봄날’ 차려

  • 기사입력 : 2019-12-05 21: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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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장군을 녹인 봄은 생명력을 품고 있어 더욱 반갑다. 하얀 서릿발의 마른 가지에서 움튼 꽃망울은 맑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겨울의 찬 공기가 내려앉은 통영의 봉숫골에서 한발 앞서 봄의 활기찬 생명력을 지닌 ‘봄날의 책방’을 다녀왔다.

    최근 SNS에서 통영의 명소를 검색하면 ‘#통영의 책방’이 꽤 많이 나온다. 알록달록한 인테리어와 문화예술이 스며있는 북큐레이션이 눈길을 끌어서다.

    통영시 봉평동에 위치한 ‘봄날의 책방’. 알록달록한 인테리어와 문화예술이 스며있는 북큐레이션이 눈길을 끈다./성승건 기자/
    통영시 봉평동에 위치한 ‘봄날의 책방’. 알록달록한 인테리어와 문화예술이 스며있는 북큐레이션이 눈길을 끈다./성승건 기자/
    다양한 책이 테마별로 전시돼 있는 봄날의 책방 내부.
    다양한 책이 테마별로 전시돼 있는 봄날의 책방 내부.

    통영의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된 봄날의 책방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강용상, 정은영 부부는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아 2010년께 요양하기 좋은 곳에서 일년살이를 하기로 했다. 매일 출퇴근으로 왕복 4시간을 소요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일상에 심신이 너무 지쳤던 그들은 ‘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날씨가 따뜻하고 너무 외지지 않은 곳, 심심하지 않으면서 문화적으로 누릴 것이 많은 곳을 찾다 보니 통영이 가장 적합했단다.

    서울에서 마케터로 일하던 정은영씨와 건축가로 일하던 강용상씨 모두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남의 일을 하다가 창의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자기의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2011년에 출판사 ‘남해의 봄날’을 냈다. 이듬해 출간한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가 제53회 한국출판문화대상 편집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의 우수출판기획안 공모 대상을 받으면서 많은 언론과 독자,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로컬시리즈’도 이색적인 시도였다. 2014년부터 통영길문화연대와 함께 시작한 ‘통영 예술가의 길’ 프로젝트를 장인지도, 문학지도, 공연지도 3종 세트와 봉수골 이웃들과 함께 마을신문 ‘봉수골 꽃편지’ 등이 대표적이다.

    2014년, 부부는 책방의 전신인 ‘봄날의집’을 만들었다. 예술 여러 분야에서 찬란한 꽃을 피운 통영이지만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실제로 지역 전통 장인들과 지역 예술가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 예술인들을 널리 알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새로운 개념의 ‘아트스테이’가 가능한 공간을 운영하게 됐다.

    산 밑 작은 마을 봉수골 전혁림미술관 아래 폐가가 책방의 자리로 낙점됐다. 출판사 인근인 데다 수십년의 세월을 지닌 이곳이 방치되는 게 마음이 쓰였고 서울의 작은 아파트 전셋값 정도로 매입할 수 있다는 것도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강용상 봄날의 책방 점장은 주위의 경관과 어울리면서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곳으로 만들었다.

    봄날의 책방.

    책방은 2014년 북스테이 봄날의집 안방 자리에 네 평 규모로 문을 연 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책방으로 유명세를 탔다. 또 지역의 예술인들을 테마로 한 특색있는 게스트하우스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000여명이 묵었다. 강 점장은 “이문당이라는 통영의 대표서점이 문을 닫으면서 주민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고 작은 책방을 만들게 됐다”며 “처음엔 작은 방 하나만 책방이었고 나머지 1,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했는데, 다양한 책과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어 책방으로 공간을 다 쓰기로 했다”고 했다.

    강 점장은 새로 공간을 꾸밀 때 주변과 어울리면서 집 같은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건축물의 설계와 구조 등 시각적 요소보다 공간이 담고 있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건축관을 갖고 있는 그는 리모델링할 때 목재로 마감돼 있던 집의 내부는 최대한 원형을 둬 오래된 공간만이 갖는 시간적 느낌을 살리고 비용도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나무 벽재와 계단, 창살이 고스란히 살아있어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빈티지한 공간이 완성됐다.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된 집에서 변화를 주기 위해 파란색과 노란색을 메인 컬러로 콘셉트를 정했는데 파란색은 통영을, 노란색은 봄을 의미한단다. 전혁림 미술관과 어울리면서도 통영 지역의 쨍하고 맑은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아기자기한 봄날의 책방 내부.

    책방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한 뒤 본격적인 구경에 나섰다. 책방 입구부터 볼거리가 풍성하다. 지붕엔 푸른색의 그림이 덮여 있는데, 지붕이 제법 커서 활용법을 고심하다가 현수막을 걸어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매년 봄과 가을마다 어울리는 책 속 삽화나 글귀 등으로 장식한다고 했다. 마당에는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유치환 작가들의 캐리커처와 글귀가 새겨져 있어 발걸음을 잡는다.

    25평 남짓한 공간 어느 하나도 허투로 두지 않았다. 제각각 특징을 살려 활용했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마루는 봄날의책방 추천 도서를 선보이는 ‘봄날의 서가’로 새단장했고, 혼자서 조용히 머무를 수 있던 작가의 방은 이름을 살려 통영의 문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 됐다.


    봄날의 책방 외부.

    전혁림 미술관이 보이는 화가의 방은 ‘예술가의 방’으로 이름을 바꾸고 미술, 음악, 공예,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얼마 전 출간된, 윤이상이 유학 중 아내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을 메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책의 의미를 더하도록 책 옆에 그가 연주했음직한 오래된 오르간과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CD플레이어 등을 함께 비치했다.

    봄날의집 안방에 있던 봄날의책방은 ‘바다책방’으로 바꿔 그림책, 바다 서적, 여행책과 함께 아트상품을 내놓았다. 바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깐 푸른색 계열의 타일과 통영의 특산품 누비로 만든 장식이 눈에 띄었다. 또 전혁림 화백의 타일로 장식한 화가의 부엌은 생태, 리빙, 교육 분야의 책이 가득한 책 읽는 부엌 서가로 변신했다. 2층 장인의 다락방으로 불리는 게스트하우스는 책방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만 사용이 가능하다.

    출판사와 책방을 통틀어 5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들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손으로 적은 ‘책꼬리’는 서가 곳곳서 만날 수 있다. 프린터로 찍어낸 글씨가 아니어서인지 책방을 찾는 이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어주는 듯했다.

    봄날의 책방.
    봄날의 책방.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한달에 한 번 미니전시를 열고, 작가 초청 북토크, 원데이클래스도 마련한다. 또 지역민들을 위해 통영 전체 책문화 읽기, 북클럽 만들기 등을 진행해 지역에 독서진흥운동도 펼치고 있다. 또 통영 예술가들과 협업해 개발한 상품도 여럿 선보인다.

    최근엔 의미 있는 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인데, 품격 있는 생활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국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제정됐다. 강 점장은 “책방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관광객들과 방문자들이 관심을 갖고 봉수골을 드나들게 됐다”며 “통영 지역의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주위에 가게들이 생겨나면서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친 점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봉수골은 4월에 봉수골꽃나들이 축제가 열리는 벚꽃 명소였지만 최근엔 젊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재미있는 골목으로 입소문이 났다. 찜 가게가 많던 동네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흑백사진관, 가죽공방이 생겼고 누비, 동양화, 자수, 일러스트,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책방과 출판사는 크기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그들과 함께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봄날의책방은 사계절 내내 봄의 따뜻함을 품고 있다. 마음에 그늘을 걷어내고 싶을 땐 남해의 봄볕을 닮은 따뜻한 책방에 걸음해 보자. 강 점장은 “오래 머물수록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며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책문화 공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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