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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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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71) 밀양 금시당 은행나무

고목이 건네주는 초록빛 눈물의 위로

  • 기사입력 : 2023-06-13 08:06:03
  •   

  • 금시당 은행나무에게 이별을 묻는다


    끝내 한 이름이 떠났다

    잡히지 않은 마음을 끌고 강으로 간다

    가슴을 도려내며 보낸 이름이라

    속절없이 은빛 강물에 새기며 걷는데

    산이,

    거대한 초록의 산 같은 은행나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때마침 부는 강바람

    나무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천천히

    나무의 중심까지 파도를 일으키는 낱낱의 잎사귀들

    이 여름 한낮, 무수한 별이 쏟아진다

    와르르, 말없이 떨어지는 초록빛 눈물

    아, 겨우 몇십 년 살며 겪은 나의 이별을

    오백 년 가까이 살아온 나무가 건네는 위로라니

    꼼짝없이 오직 한 자리에서

    전쟁과 죽음과 참혹한 시절도 묵묵히 견딘

    나무가 들려주는 말씀이라니

    부끄러워라

    하나의 잎사귀보다 작은 나의 슬픔아

    이제 먼저 떠난 이름을 추억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호명하는 법을 배워

    초록에 물든 귀를 열어

    나무의 시간을 듣는다


    ☞ 나무를 좋아한다. 꽃보다 나무가 훨씬 좋다. 나무에 대한 외경심에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꼭, 가보려고 한다. 초록의 잎사귀들을 보면 가슴에 파도가 인다. 밀양 금시당에 400년 넘은 나무가 있다 해서 달려갔다. 1982년에 420년 된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니 그후 41년이 지나 수령 460년. 그러니까 약 500년이 되어간다. 밀양 12경 중의 하나인 금시당. 멀지 않은 곳에 월연정도 있고 활성유원지도 있다. 금시당은 밀양강이 흐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은행나무의 위엄은 가히 장관이다. 그저 입을 닫게 만드는 나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나무 앞에 서면 위로의 기운을 받는다. 흐르는 대로 맡겨보라고, 강물 따라 슬픔도 고통도 지나간다고. 나무가 들려주는 것을 듣는다면, 그 시간은 평안하리라 믿는다.

    시·글= 이서린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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