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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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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메이저리거- 윤선

  • 기사입력 : 2024-02-08 08: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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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는 선수였다

    한 번의 연습도 없이


    주위 사람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고

    선수답게 떠났다


    가끔 호스피스 병동 엄마 침실에 숨어들어

    방아깨비처럼 말라 버린 엄마 곁에서

    아침까지 잠들었다가 들키는 일은 있었지만


    해가 바뀔 때마다

    응급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연습하던 큰언니보다

    멋진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하늘까지 몰고 간

    작은오빠보다 오래 살았다


    자식들 하나둘

    몸 가르는 경기까지 다 지켜보면서

    당신의 홈에서 품었던 새끼들이

    죽음의 문턱까지 달렸을 때도

    당신의 피와 살을 긁어 그 문턱을

    마르고 닳도록 닦고 닦더니

    안간힘을 다해 문턱의 금을 짓뭉개 버렸다


    아무도 선수를 선수답게 대접해 주지 않았지만

    엄마는 선수였다


    살아 있는 날은 계속 삼진이었지만

    죽음 앞에서 멋진 홈런을 날린 거다


    죽음을 몇 번 연습한 우리는

    세상의 공명으로 떨리는 새가슴을 움켜잡으며

    엄마의 뜨끈한 희생타를

    오래 끌어안고

    이렇게 떨고 있다


    ☞ 삶은 누구에게나 실전의 연속이다. 예고도 없이 맞닥뜨리는 극적 정황들이 스포츠와 닮았으며 때론 회차마다 드라마틱하여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시는 ‘모성애’라는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엄마와 자녀와의 관계적 역사가 전개되어 있다. 한마디로 초일류 빅리그다.

    메이저리거(major leaguer)엔 뼈저린 말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선수였다’, ‘선수답다’라는 표현이다. 마지막 생의 필드,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번의 연습도 없이 ‘~답게’ 떠남을 묘사한 말로 ‘엄마답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뒤늦게서야 시인은(아니 우리는) 엄마의 죽음(아니 홈런)이 희생타임을 알게 된다. 타자 자신은 아웃되었지만, 남은 자식은 진루하거나 득점할 수 있도록 ‘번트 아니면 외야 플라이’였음을….

    ‘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다. 작가는 그의 텍스트를 아직 모를 뿐이다.’ 독일의 고트프리트 벤에 의하면, ‘엄마’가 더욱 그런 존재가 아닐까. 불러보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 詩! -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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