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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우리말 수난시대- 왕혜경(전 김해 월산중 교장)

  • 기사입력 : 2020-06-30 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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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앞까지 신선하게, ‘1인용 과일’ 정기구독 급증’오늘 아침 뉴스에 뜬 기사 제목이다. 그것도 엄청 큰 크기로.

    과일을 정기구독한다? 기자가 실수를 한 걸까? 아니면 정말 구독의 뜻을 몰라서 저런 제목을 뽑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그 기사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목줄 미착용 금지, 배설물 방치 금지’ 장유 율하의 공원 곳곳에 설치해 놓은 현수막 문구이다. 그 현수막을 보고 단번에 의미를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착용 금지? 착용 안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이니 착용하라는 뜻이네’라고 이해하기까지엔 다소 시간이 걸렸다. 현수막은 보는 즉시 뜻을 알 수 있도록 간결하고 선명하게 작성해야 한다.

    ‘목줄은 반드시 착용합시다. 배설물은 방치하지 말고 처리합시다’란 쉽고 좋은 말이 있는데 굳이 저렇게 이중 부정의 어려운 말을 써야 했을까? 요즘은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금지한다거나 하지 말라는 강압적인 부정형의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우리 같이 해볼까?” “같이 해보면 어때?”라는 청유형의 긍정적 말이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효과가 훨씬 커, ‘금지의 금지(?)’로 표현된 현수막이 그래서 더 구식이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은어, 비어, 속어가 난무하다 보니 우리말이 몸살을 앓는다. 더구나 높임말은 자기를 높이는지 상대방을 높이는지, 사람을 높이는지 물건을 높이는 지 알 수 없는 말이 난무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화 오셨다’는 말과 ‘내가 아시는 분’이다. 전화기를 높이고 나를 높일 수야 없지 않은가! ‘전화를 하셨다’ ‘내가 아는 분’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말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쓰지 않으면 없어지고 필요하면 만들어지기도 한다. 없어지는 말이든 신조어(新造語)든 그 말을 쓰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말의 기능 자체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임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쓰는 정확한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오늘 하루 나의 언어문화를 돌아보게 된다.

    왕혜경(전 김해 월산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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