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성산칼럼]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 송봉구(영산대 인문학 교수)

  • 기사입력 : 2020-08-12 20:15:19
  •   

  • 계속되는 비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이런 경우는 주변 환경이라도 좋아야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주변 환경이란 경제와 정치를 말하는데 경제는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치도 거대 여당의 질주 속에 야당은 힘없이 끌려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답답한 현실을 극복할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그 길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 안연이 ‘인(仁)’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했다. 풀이하면 ‘자신의 욕심을 이기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남보다 많이 가지고 싶은 마음, 남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욕심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욕심을 가진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이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을 잘 알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지나친 욕심은 처음부터 갖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는 욕심을 가지고 화려한 꿈을 꾸고 있으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인간이 이러한 어리석음을 가지게 된 원인을 감각기관에서 찾고 있다. 바로 눈·코·귀·입·마음 등이다. 눈으로 예쁜 것을 보면 갖고 싶고, 귀로 잘못된 정보를 들으면 남을 모함하게 되고, 입으로는 늘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마음으로는 눈 귀 코 입으로 들어온 대상물을 가지고 늘 잡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이 대상물을 접하는 순간에 날카로운 칼로 유혹을 끊어야 한다.

    문제는 사람마다 이런 날카로운 칼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칼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공부다. 그래서 인간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에는 더하기와 빼기 공부가 있다. 더하기 공부에 속하는 것이 ‘독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역사·철학 책 등을 계속 읽으면 날카로운 칼을 가지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여름에는 ‘맹자’를 읽었고, 겨울에는 ‘논어’를 읽었다. 여름에는 더위가 짜증나게 하니 맹자의 시원한 말솜씨를 통해 짜증을 이겨내었고, 겨울은 추위가 우리를 괴롭히니 공자의 깊은 가르침에 몰입하여 추위를 잊어 버렸다.

    빼기 공부의 대표적인 것이 ‘정좌(靜坐)’다. 조용히 앉아서 자기가 갖고 있는 각종 잡념들을 비우고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다. 처음 정좌를 하면 각종 잡념들이 마음 통일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때 마음을 통일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불교의 ‘이뭐꼬’ 화두가 유명하다. 유래를 살펴보면 남악회양 선사가 육조혜능대사를 처음 찾아갔을 때 혜능이 회양에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고 했다. 회양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자신을 찾는 공부는 하지 않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만 했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회양은 8년 동안 자신을 찾는 공부에 몰입했다. ‘무슨 물건’ 이것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집중하여 자신의 본질을 찾으러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8년 뒤에 자신을 찾고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찾은 본질이 대단할 줄 알았는데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혜능이 묻기를 ‘증득할 것이 있더냐?’ 공부할 게 더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답하기를 ‘없지는 않으나 더렵혀지지 않습니다.’ 겸손한 답변이면서 공부가 완성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혜능이 말하기를 ‘옳다. 그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아끼시는 것이니, 그대가 이미 이와 같으며, 나도 또한 이와 같다.’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가해주는 장면이다. 또 한 명의 부처가 탄생한 것이다.

    날씨와 주변환경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요즘 더하기 공부와 빼기 공부를 병행해서 또 한명의 부처로 거듭나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한다.

    송봉구(영산대 인문학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