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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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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고맙습니다- 서정홍

  • 기사입력 : 2022-12-22 08: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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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 돌아 어김없이 나를 깨우는 시계가 있어

    나를 잊지 않고 알아보는 치매 걸린 할머니가 있어

    콧노래 부르며 밥상 차리는 어머니가 있어

    나를 덥석 안아주고 일터에 가는 아버지가 있어

    어떤 말썽을 피울지 모르는 개구쟁이 동생이 있어

    신발장에서 밤새 나를 기다려준 정든 신발이 있어

    수업 시간에 시를 읽어 주는 선생님이 있어

    목마를 때 먹을 수 있는 시원한 물이 있어

    언제든지 나를 반겨 주는 큰 소나무가 있어

    마음 놓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소중한 친구가 있어

    배고플 때 찾아가는 ‘흥부네 떡볶이’ 집이 있어

    책꽂이에 나를 웃기고 울리는 동화책이 있어

    지친 나를 기다려주는 따뜻한 방이 있어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몸을 덮어주는 이불이 있어

    오늘,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별이 있어


    ☞특별한 것 없는 아이의 하루가 행과 행 사이로 발걸음 가볍게 흘러간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아이의 마음이 되어 행복해진다.

    자명종 시계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내 엉덩이를 두들겨준다. 아버지는 일터에 나가기 전에 나를 덥석 안아주고 동생은 학교 갔다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수업 시간에 한 편의 시를 읽고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놀 때 큰 소나무가 가지를 저어 바람을 보내준다. 수업이 끝나면 흥부네 떡볶이에 우루루 몰려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온다. 동화책을 읽다가 아랫목에 누우면 창밖의 푸른 별 하나가 잘 자, 하고 인사를 한다.

    일상이 탈 없이 흘러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무 한 그루 물 한 모금에도 감사하는 하루, 이것이 사람살이의 행복이다. 아이의 평범한 하루가 어른들에겐 어느새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부족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연말, 내가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따뜻하게 보냈으면 한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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