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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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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75) 함안 고려동

돌담마다 서린 고려 충신의 고토 회복 염원

  • 기사입력 : 2023-08-08 08: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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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비(白碑)

    무덤엔 단 한 줄 글귀도 새기지 마라.

    내 삶은 찬미할 그 무엇도 없으니

    내생(來生)은 백골로 참회할 또 한 번의 시간이다.

    오백 년 왕조 잃고, 동문의 벗들 잃고

    한목숨 부지한 채 이곳까지 왔으니

    남루한 죽음 앞에서 눈물일랑 보이지 마라.


    ☞뜻 있고 재주 있는 이가 자신을 유폐시키는 일이 쉬우랴. 남은 생애를 고스란히 세월 속에 묻고 더 오랜 내생을 향해 걸어간 사람의 그림자를 생각한다. 모은 이오(茅隱 李午) 선생이 그랬다. 일찍이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의 문하에 종유하면서 의리와 학문에 독실하여 당세 사람들에게 추앙받았다.

    조선이 건국하자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로 은거처를 옮겨 고려동학(高麗洞壑)이란 표비를 세우고, 담을 둘러쳐 고려동(高麗洞)이라 명명했다. 당시 고려 선비들은 고구려 땅, 그 고토 회복의 염원이 강했다. 그러므로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의 나라에서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고려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선생은 “내가 죽으면 묘비에 글자 한 자 새기지 말라”는 백비(白碑) 유언을 남겼고, 후손들은 그대로 행했다. 이 비는 가야읍 혈곡리 37-1 야산, 선생의 무덤 앞에 다소곳이 서 있다.

    시·글= 이달균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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