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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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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79) 주남지

무성한 욕심 사이로 무심히 서 있는 죽은 나무와 산 나무

  • 기사입력 : 2023-10-10 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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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남지
    주남지

    한 숨


    그날 나는 모르는 척 애써 붙들고 있던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고

    텅 빈 정류장에 서 있었다


    당혹스럽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들키지 않으려 소리 나지 않게

    몇 번을 계속해서 뒤섞어도

    흔하디흔한 감정은 매번 쉽게 들켜버렸고


    처음부터 잎 하나 매달지 않을 한 그루 나무가 될 걸 그랬어

    허기의 표정으로 가는 먼 길이 될 걸 그랬어


    어딘가에선 누군가 자꾸 궁금한 쪽으로 한 숨을 흘려보내고

    그래서 그 질문들이 강을 이룬다 해도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쪽으로 눈길을 주기로 했다


    내가 없을 빈 가지에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날들이 왔다 가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빗방울 하나의 무게여도

    그 무게만으로 한 그루 나무가 기척을 키우더라도


    ☞ 주남저수지 물풀 사이에 온 몸을 물에 담그고 살아가는 나무가 물그림자를 길게 그린다.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나무의 극명한 대조, 그리고 죽어가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긴 목의 두루미 한 마리. 삶이란 어디든 이토록 죽음의 그림자를 덧씌우면서 함께 견디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아침. 매번 다른 색으로 물이 드는 산천초목이 시시각각 흔들리면서도 제 그림자를 결코 놓아버리는 일은 없다. 하지만 사람의 결심이라는 것이 매번 다르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놓아버리는 때도 있나니 그래서 다시 새로운 결심으로 새 힘을 얻을 때까지는 무성한 욕심들을 껐다가 켜기를 반복하나니 그게 삶이고 존재의 이유이니 저 한 그루 나무와 다를 게 없다. 한 번의 숨이 다른 숨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글= 이기영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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