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11) 영화감독 정보경
앵글 속에 담은 ‘특별한 시선’ 선한 영향력 꿈꾸다어린시절 父 영향… 감독 꿈꿔
- 기사입력 : 2023-07-21 09: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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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독립영화 제작 참여
다양한 현장경험 필요성 느껴
타지키스탄서 3년간 활동
2016년 초단편영화 대상 수상
마산여중 학생들과 영화 제작
영화 꿈나무 육성에 시간 할애
최근작 단편영화 ‘계약만료’
가정위탁 제도 널리 알리고파
“선한 영향력의 확산을 꿈꿉니다.”
정보경 영화감독(37·아래 사진)을 만났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해 그런지 만남에도 미장센을 중시한다. 만날 장소, 자리, 바라보이는 뷰를 정하는 데에 세심했다. 아직 풋풋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아내였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눈매가 매력적인 그녀는 배려가 몸에 배었고 순수한 열정을 지녔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전하는 이야기, 살아온 이력에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화감독뿐 아니라 영화 제작 교육자라고도 불러야 될 것 같다. 많은 학생에게 영화 제작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영화 제작’이라는 영역을 코앞으로 훅 당겨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인이 누리기 힘들었던 창작의 새로운 장르를 우리 지역에서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단편영화 ‘계약만료’ 촬영현장에서 정보경(오른쪽) 감독이 현장 모니터링을 하는 모습.정보경 감독이 영화계에 입문한 것은 2009년 독립장편영화 ‘이파네마 소년’이라는 작품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 작업을 마친 후, 영화감독 준비 과정으로 다양한 현장경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국제NGO 단체인 오퍼레이션 머시(Operation Mercy)를 통해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으로 갔다. 거기서 3년간 사진 촬영, 영상 제작 등 현지의 삶을 담는 활동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 감독은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
정 감독이 연출한 첫 영화는 ‘깊은 파미르 산골에 퍼지는 희망의 빛’이라는 작품이다. 계명대학교 사회환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시각장애인들의 개안 수술과 연계된 작품이다. 타지키스탄의 국립시각장애인학교 학생들의 삶을 영화로 찍었다. 선한 영향력의 확산이라는 정 감독의 영화철학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러다 2016년 단편영화 ‘소금사막 The beginning’을 연출하면서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를 한다. 네팔의 모습을 그린, 그림 전시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제2회 창원스토리 초단편영화 공모 대상을 받았고 이후로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다.
단편영화 ‘계약만료’ 촬영현장에서 정보경(오른쪽) 감독이 카메라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현재 정 감독은 영화인 꿈나무들을 키우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수강생은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주로 그 대상이다. 문화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마산여중 방송부 학생들과 함께한 ‘가을이 오면’이라는 영화이다. 학생들의 열정에 정 감독도 놀랐으며 그들이 정한 영화의 주제 또한 기특했다. 지구온난화로 점점 짧아지는 가을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내용으로 2022 BIKY 청소년 단편영화 부문 공모에 선정돼 올해 열린 BIKY에 ‘2022 지원작 상영회’를 통해 상영됐다.
‘가을이 오면’은 12명의 학생 스태프가 시나리오, 감독, 조감독, 촬영감독 등을 맡아서 제작하였고, 연기를 하는 출연진은 오디션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뽑았다고 한다.
맨 처음 12명의 여중생이 각자 다른 시나리오를 썼으며, 그들 스스로 투표해 고른 한 편이 ‘청소년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뽑혔다. 시나리오부터 시작해서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다 거쳐보려는 학생들의 열정에 정 감독도 감동했다.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정 감독은 지인들에게 촬영 멘토, 연출 멘토 등을 부탁하였고, 작업을 잘 마무리시켰다. 학생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 제작에 꼭 필요한 산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이후 경남교육청에서 취재를 나오는 등 관심을 보였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만든 영화인 데이터베이스에 학생들의 이름이 등록되기도 했다. 정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한 ‘계약만료’ 작업 시에도 중학교 3학년 학생에게 연출진 일을 맡길 정도로 제작의 기회를 제자들에게 주고 있다.
단편영화 ‘소금사막’ 촬영 현장.정 감독이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데는 3대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는 많은 영화를 보러 다녔고 어린 딸도 자주 데리고 다니셨다. 집에서 부친 파전을 들고 가 먹으며 아버지랑 영화를 본 경험도 있다니 인상적이다. 팝콘이라는 영화 식(食)문화가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정겨운 장면이다. 아버지의 사진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를 빌려와 볼 때면 동네 꼬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관은 작은 극장이 되곤 했다. 이 또한 비디오 플레이어가 귀하던 시절에 볼 수 있던 정겨운 장면이다.
정 감독이 가장 최근에 작업한 영화는 위탁 가정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 ‘계약만료’다. 위탁 가정에 맡겨진 9세 아이를 찾아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미혼모, 위탁 아동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위탁모의 시각 등을 통해 가정 위탁의 기능을 조명한 작품이다.
현재 ‘2023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상태로,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와도 연관된다. 산술적으로 1인 여성이 2명의 아이를 출산해야 될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현재 여성 1인이 평균 0.78명 출산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이런 시기에 좋은 영향력을 전파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가정 위탁이라는 제도를 알리고 싶었고, 친자식이나 입양아는 아니지만 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헌신하는 위탁 부모들의 이야기를 알리며 그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정 위탁’이라는 제도를 조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인터뷰를 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가정 위탁의 필요성이 정 감독에게 더 절실히 와 닿았을 것이다.
마산여자중학교 학생들과 단편영화 ‘가을이 오면’ 촬영 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정보경 감독 제공/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 부탁에 정 감독은 “예전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현장 경험 또는 전문적인 공부나 유학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얼마든 창작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나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영화 창작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영화감독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창작하기 때문에 글을 많이 써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라고 제언한다. 영화 제작의 비용 문제를 차치한다면, 이제 영화 제작이 하나의 취미가 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주언 시인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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