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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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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16) 조은태 화가

더 나은 세상 위해 예술적 재능 나누며 함께 나아가요

  • 기사입력 : 2023-08-24 21: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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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서 한 디자인학과 다니다
    부조리한 전통 못 받아들여
    창원대 재입학 한국화 전공
    예술로 힘든 사람 돕고 싶어
    예술적 재능 사회 환원 고민

    경남문예진흥원서 문화예술교육
    지체부자유자·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이들과 작업하며 소통
    아시아 젊은 작가 미술축제 참여
    자신만의 미술세계도 새롭게 구축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이운진의 시, -슬픈 환생- 부분)

    조은태 화가(28세)는 시의 영향을 받아 근작 ‘슬픈 환생’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신화적 상상력은 언제나 자극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조은태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아주 인상적이다. 개성적이면서도 뭔가 폐쇄적인 듯 고독하고 어둡다. 그러나 작품 세계와 달리 그의 성격은 소탈하고 쾌활하다. 또한 문학, 예술,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독서량도 상당했다. 젊은 작가임에도 사고의 폭이 깊고 넓어 다양한 사람과의 소통이 그에게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상이었다.

    조은태 작가가 작업실에서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은태 작가가 작업실에서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은태 화가는 부당함을 그냥 넘기지 않는 기질의 작가로 느껴진다. 부조리한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려는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 디자인학과에 다녔으나 전통적으로 이어진 선배들의 갑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나쁜 답습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을 실감하고 대학을 떠나왔다. 그 후 창원대학교에 다시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했다. 취업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원하는 순수미술을 평생 하게 돼 그 과정들이 헛수고는 아닌 셈이다. 졸업 후엔 대학원 과정으로 계속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왜 예술로써 힘든 사람을 돕지 못하는가, 나의 예술로 폭력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마침내 예술적 재능의 사회적 환원을 고민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조은태 作 ‘마음속 살아있는 존재의 죽음’
    조은태 作 ‘마음속 살아있는 존재의 죽음’
    조은태 作 ‘달이 가면, 해가 오고’
    조은태 作 ‘달이 가면, 해가 오고’
    조은태 作 ‘슬픈 환생’
    조은태 作 ‘슬픈 환생’

    처음에는 ‘어떻게 나를 드러낼 것인가’라는 작업에 고심했다. 그러다 덜어냄의 방식을 취하게 되었고 ‘허무’라는 지점으로 이어졌다. “덧없음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다. 우유부단하고 모순적인 존재들. 삶과 죽음, 희로애락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가엽고도 거대한 마음을 가진 존재. 나는 이런 인간이 쏟아낸 감정과 채워질 감정의 마음속이 비워진 찰나에 집중하여 분채로 담아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초기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인다. 뭉뚱그려 말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측은지심이다. 특히 그가 ‘무성역자’의 이야기를 할 때는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성역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선악과를 따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상상하는 작가다. 아마 그들이 ‘무성역자’였다면 인간은 또 다른 신화시대를 살았을지 모르고, 지금은 아주 색다른 세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도 원시 인간에 대한 향수, 태초의 인간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를 본질적 휴머니스트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더 나은 세상’으로 관심이 계속 옮겨간다. 아직 풋풋한 20대 작가의 이런 열정과 사유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더욱 굳히게 되었다. 현재 문화예술교육 전문단체인 쿤스트파이(kunst π) 소속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체부자유자들과의 작업, 다문화가족과의 작업(‘달에서 온 토끼’),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마인드 캠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잭과 콩나무’ 이야기처럼 여러 개의 콩 중에서 한두 개는 크게 자라기도 했다. 그를 거쳐 간 사람 중에는 미술의 소질을 발견한 사람, 자살을 생각하다 멈춘 사람, 무의미하다고 느끼던 삶에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은 사람도 있었다.

    ‘마인드 캠프’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방 안의 코끼리’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6·25전쟁에 대해 물었더니 세대마다 놀랍도록 각기 다르게 알고 있었고, 각기 다른 비전을 갖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의 결과물은 세대 간 갈등을 줄이는 자료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방 안의 코끼리’는 사람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문제에 접근하게끔 하는 작업이다. 젠더 문제, 가족 문제, 우정(사랑) 문제, 게으름 등등 대상자 스스로가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질문한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즉흥 질문을 계속 이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속 코끼리를 끄집어내려는 작업이다. 이것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현대인의 심리적 불편 혹은 정신건강과 관련 있어 보인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위해 설치예술 같은 미술적 장치도 구상하고 만들어야 한다. 젊은 작가의 구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풍요로우니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그의 가족은 모두 경기도에 살고 있다. ‘혼자 창원에 떨어져 사는 게 외롭지 않을까. 그래서 흑백과 명암을 이용한 그의 초기 작품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띠고 있는 걸까’라는 필자의 우려와는 달리 함께 작업하는 친구가 있어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듯하다. 그 친구는 백초희·김예림 작가다. 자주 만나 함께 작업하고 전시하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작품 세계가 통하고 인간적으로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현재 조은태 화가는 예술의 사회적 기여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술 세계도 새롭게 구축해나가고 있다.

    “저의 화면에는 빛과 어둠의 그 사이, 보이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찰나에서 느끼는 중간 지대를, 인간을 통해 화면으로 담습니다.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것들, 찾아야 할 것들, 남겨야 할 것들 말입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움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런 사유 속에서 허무 시리즈를 딛고 넘어서며 위로와 휴식을 주는 시리즈로 옮겨가는 듯하다. 색감도 밝아졌다. 그것은 2020년 2021년 아시아프 출품작과 2023년 아시아프 출품작의 변화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아시아프(ASYAAF)는 2008년부터 시작된 ‘아시아 청년작가 미술축제’로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이 초대된다. 조은태 작가는 이 전시에 여러 번 초대돼 실력을 검증받은 셈이다.

    조 작가는 “허무의 시간 속에 놓인 존재들에게 그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회복의 기간임을 말하고 싶다. 순수한 허무가 우리의 불안과 희망 사이의 고마운 휴식처이길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허무를 회복과 휴식으로 전환하는 사유가 철학적이다.

    AI시대 미술에 관해 물었다. 답은 긍정적이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며, 디지털 기술력에 작가의 창의력을 얼마나 잘 접목하느냐가 관건일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디지털 미술이 범하지 못할 아우라가 느껴진다.

    “조은태의 그림은 디지털 영상의 시대에도 회화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를 드러냅니다. 어떤 논리로나 정보 취득으로나 알 수 없는 대상의 본질, 있는 그대로 시각화에 빨려 들어가는 매혹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쓴 윤규홍(예술사회학)의 평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은태 화가의 미술 세계와 그 개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주언 시인
    이주언 시인

    이주언 시인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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