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정빈 대건안드레아·3 - 변승기
따르릉 따르릉“할아버지 왜 전화했어요?”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주기도문 잘도 외우는우리 도련님은 아홉 살부산 강서구 명지남명초등학교 2학년 2반 6번태권도며 리틀 야구며또래 동무 와글와글한반 짝지 영희도 생겼겠다“나중에 전화해요. 뚝” “할아버지 최고야”라던 때가엊그젠데지켜보던 마나님 왈“짝사랑하지 ...2016-12-15 07:00:00
- 찰나의 꽃 - 이종만
새벽 한 시에 피었다찰나에 시드는꽃이 있다순식간에 피었다 지기 때문일까꽃은 너무 눈부셔그 꽃 마음속에 지니고일생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새벽 한 시어둠 속에서 번쩍 피었다사라져 버리는 꽃☞시인은 남녘의 섬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어느 해 봄부터는 매년 강원도까지 갔다가 11월이면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하였...2016-12-08 07:00:00
- 노송 한 그루 - 이광석 한파가 겹겹으로 포위를 해도조선의 소나무들은 추위를 탓하지 않는다백 년 묵은 노송들 낡은 두루마기 내복까지 벗겨져도집안 어르신답게 제 뿌리를 지킨다세상에 땅속보다 더 따신 곳이 어디 있으랴저 꽁꽁 언 대지에 새순 피리 부는 소리긴 들판을 돌아 나오는 ...2016-12-01 07:00:00
- 반성문을 쓰다(가우디 ‘성가족 성당’ 앞에서) - 김미숙
기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생의 마지막 날동전 한 푼 없이 떠났다는그의 영혼 앞에서 나는화려한 성당이 하늘을 향해 오르는 동안욕심을 버려 신에 닿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두려운 마음으로 반성문을 씁니다기도는 원하는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온전히 나를 맡기며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것웅장한 파이프 오르...2016-11-24 07:00:00
- 경계 - 우원곤
물먹은 솜 같은귀갓길아파트 앞 주차 중에늑대 한 마리 보았다스치듯 지나갔다오래된 제 영역인 듯눈에서 석양의 검이 보였다울지 않은 울음 속에 서늘함이 넘쳐흘렀다잠깐 스친 공간 늘 내 안으로 안주해 온 일상이민들레 꽃 대궁처럼 위태하다☞ 얼마 전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시를 읽었습니다. 제목이 ‘경계’였는...2016-11-17 07:00:00
- 골똘하게 앉았다 - 이창하
푸른 밥들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계절오래된 시간이벌레가 갉아 먹은 밥처럼 수척해져 갔다처음부터 그들의 밥이었던 것들이꿈틀거렸다꿈틀거리던 시간들이 바람처럼 요란하게 흔들렸다흔들리던 언어들이 놀처럼 퍼져 갔다바스락거리던 공간에서 노란 밥들이 춤을 추고 있다춤추는 밥들이바스락거리며 야위어 갔다고...2016-11-10 07:00:00
- 잠꼬대- 민창홍
골목 귀퉁이에서 채소 실은 트럭가을볕에 낮잠 자고확성기 소리의 주인은 코를 곤다동네 노인장기판에 머리 박고 손을 떤다요즘은 장사도 안 되고 사는 일이 왜 이런지차를 들고 장군을 외친다한숨 소리에 모여든 구경꾼응원군 얻은 듯이 멍군을 외친다영감님 졸로 피해야지요누가 장기를 두는지 모르겠네새벽잠 설...2016-11-03 07:00:00
- 그대에게 4 - 김수부
문득문득그대 향한 쪽빛그리움깨무는풍경마다피가맺히고내 마음의빈자리바람이 불어시월의 창문 너머구름 한 점☞ 지구상에서 감정을 가진 인간이 등장한 이후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마냥 수줍고 가슴 떨리지 않았던 첫사랑이 있을까만, 어느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영원한 떨림이며 그리움입니다. 그러고도 충분히 남...2016-10-27 07:00:00
- 시집(詩集)을 사네 - 강신형
호주머니에 더러, 믿음이 남아 있는 날이면18세 어여쁜 청춘들이 눈 시리운 창동 거리에 나가오롯이 솟아나는 그리움으로 한 혁명가의 시집을 사네단돈 3천 원에 죽음보다 깊었던 그대목숨을 사네☞ 가을이면 책 읽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 하여 ‘독서의 달’로, 각종 언론매체나 기관마다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2016-10-20 07:00:00
- 산양 - 문희숙
위험에 중독된그의 집은 벼랑에 있다안개의 높이에서뭉툭해진 저 발굽비탈이 깎아 세운 불안은그의 생을 가둔다양삭에서 계림까지날개 없는 흰나비마른 바윗길삶의 은유도 지칠 무렵배고픈 짐승 한 마리공중에서 부양 중이다☞ 제 일터로 종종 다양한 책이 배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일일이 정독하여 읽...2016-10-13 07:00:00
- 가을 부근 - 정일근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거미를 ...2016-10-06 07:00:00
- 산정묘지山頂墓地 19 - 조정권
우리는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좌초한 인간들.가 닿을 수 없는 높이를 강인하게 추구하다가한기寒氣를 끌어 모아 서리를 뱉어내는 겨울 땅에결국은 드러눕는 인간들.언젠가 이른 봄 그대들이 찾아낸 새파란 무덤 하나,그대를 향해 왈칵 달려드는 풀내음그것이 우리가 끝까지 살아야 했던 이유이다.☞ 지금 이 땅은 경제...2016-09-29 07:00:00
- 무등차(無等茶) - 김현승
가을은술보다차 끓이기 좋은 시절…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씀바귀 마른 잎에바람이 지나는,남쪽 십일월의 긴 긴 밤을,차 끓이며끓이며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술! 술 곁에는 늘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 외할아버지 탁주 심부름하다 주전자 입에 대고 홀짝거리던 술과, 대학시절 이후로 지독한...2016-09-22 07:00:00
- 비정규직 초승달 - 정연홍
뱃가죽처럼 홀쭉하다낫을 품고 있구나만월이 되어 웃을 때까지얼마나 오래외로운 저 철탑에 걸려 있어야 하나☞ 조선업 경기가 엉망이다. 연일 구조조정 타령에 마음이 무거운데, 수백억원대 횡령 비리가 터져 나오니 화병이 날 지경이다.퇴근길, 회사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작업복들. 내리자마자 담뱃불부터 찾...2016-09-08 07:00:00
- 네 모발 - 김춘수
여름은 가고네 모발을 생각한다.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면네 모발은 바다를 건너더욱 깊이 내 잠 속으로 오리라.바람이 이제어제의 제 그늘을 떠나고 있다.분꽃 하나가 바람을 따라 흐르고 있다.하늘 높이 눈을 뜨고 불리우며흐르고 있다.마침내 깊이깊이이 세상의 분꽃 하나가하늘에 묻히리라.☞ 지긋지긋하던 폭염 ...2016-09-01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