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보 이불- 김일태시골집 정리를 하고기거하시던 자리에 누워어머니 백오십 단구 감싸던 이불을 덮는다동생과 내가 모아 드린 크기 다른 수건요리조리 잘 놓아 키에 맞춘알록달록 조각보이불가슴을 덮으니 발목이 나오고발목을 덮으니 가슴이 서늘하다시부모살이 육남매 바라지단 한 번 넉넉한 때 없이조각조각 잇대고 기워 사신어머니 ...2013-12-12 11:00:00
- 바다 안개- 이재성바다 안개가 짙은 날 종소리가 들린다관자놀이를 마구 때리는 종소리 들린다그런 날은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누구든 알아서는 안 된다보이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들리는 것에 홀려서도 안 된다안개가 안개 속으로 짙어지면서종소리가 요란하다그물이 보이지 않는데은빛 물고기들은 끝도 없이 밀려든다물고기...2013-12-05 11:00:00
- 해인사- 김혜연해인사 계곡물소리 음각이다 솔바람 맑은 절간 앞마당 삼층석탑 석등 그림자 음각이다 저녁 법고소리 예불소리 저무는 가야산 붉은 어깨 음각이다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처마밑 풍경 음각이다 팔만대장경판 그 속에 숨어 있는 고려의 달빛도 음각이다 명부전 조사전 돌아 어진 사람들 가슴 지키는 누군가...2013-11-28 11:00:00
- 1시간 30분- 김명희바싹 마른 비명의 돌기가 솟구쳤다탄식과 울음의 불바다화부는 단내 나는 화덕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쇳소리 여운 뒤엔 긴 묵음이다체념의 눈빛들이 전광판 모서리로 달려갔다아무리 외진 몸이라도벗어 놓고 지나갈 수 없는1시간 30분, 저 절대의 시간 앞에서스스로 무릎을 꿇고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끙끙대는 동안눈동...2013-11-21 11:00:00
- 마라도- 김시탁사랑에 마음을 다쳐 상처 난 마음을 버릴 곳 없는 자는 마라도로 가라 모슬포항에서 뱃길로 30리쯤 더 남으로 들어가면 상처받은 사람들을 업어줄 움츠린 등 넓은 섬 하나 있다 그 섬에 뱃머리가 닿으면 제일 먼저 바람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주고 바람이 등 떠미는 곳으로 올라가라 올라...2013-11-14 11:00:00
- 뇌사에 대한 문학적 고찰- 최영철 뇌사에 대한 문학적 고찰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소프트웨어의 크기는손가락 마디 하나인간을 조종하는 뇌의 크기도쏟아놓으면 한 접시배후조종은 정체를 숨기느라 크기가 작다지시하고 분노하고 쾌락을 거두어가는 뇌몸은 한 주먹 뇌의 노예흡연 음주 마약 섹스이 모...2013-11-07 11:00:00
- 환한, 내 것인 네 것- 이하석사진을 찍어달란다. 사진기를 받아 조그만 창으로 내다보니 그들은 서로 환하게, 다시 붙는다. 서로 참는 모습이 아니다. 함께, 웃음의 맞불을 지핀다. 그녀의 부푼 가슴을 그의 팔꿈치가 지그시 짓이기는 게 보인다. 그런 걸 눌러 찍는다. 날 믿지 못하겠는지, 다시 확실하게 서로 間을 붙들어두려는지 한 번만 더 찍어...2013-10-31 11:00:00
- 낙엽의 시- 임성구석류알 같은 한 줌 빛 와르르 쏟는 시월 오후붉은 발자국 찍는 노란 구두 한 켤레가바스락땅 위에 시를 쓴다태곳적 붓을 들고폭풍이 몰아치는 얼음의 강을 지나벌 나비 춤추던 알싸한 초원도 지나매미가 목청을 돋우던 통증 멀리 사라진 언덕은행나무가 줄지어 레일을 만드는 동안불면의 밤은 또, 얼마나 깊고 깊었던가...2013-10-24 11:00:00
- 연어- 정호승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사람의 손에게 이렇게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거친 폭포를 뛰어넘어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2013-10-17 11:00:00
- 섬진강- 김승강섬 진 강아버지 술 취하시면이 세상이 천국입니다.아버지술 깨시면이 세상은 지옥입니다.먼 도시의 불빛처럼세상은 천국과 지옥으로 깜박입니다.형광등은 수없이 명멸하면서빛나는 거라지요.천국과 지옥의 나무 사이에강이 있습니다.천국과 지옥이 명멸하는 빠르기로 쫓아가면나루와 나루 사이강이 한 줄기맑은 소줏빛으...2013-10-10 11:00:00
- 바바마마-옹알이 시간 - 박서영첫 마디 울음.그것은 가슴에 고여 왜 사라지지 않나.똥으로도, 오줌으로도 흘러나오지 않나.맨 처음의 발음이었던 울음.나의 언어와 표현은 발달하고상처와 고통은 안으로 깊이 가라앉고가끔은 비명도 질렀는데왜 아직도 옹알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입 안에서 빙글빙글 천둥을 녹여먹고, 연애를 녹여먹고 있나.잠자...2013-09-26 11:00:00
- [시가있는 간이역] 꾀꼬리 달- 이은봉그래요 달은 깃털 샛노란 꾀꼬리지요부리조차 샛노랗지요 달은어두운 밤하늘 환하게 쪼아대다가그만 지쳤나 봐요우리 집 베란다에까지 날아와플라스틱 창들을 쪼아대고 있네요샛노란 깃털을 뽑아주방 안에 자리를 펴는 것을 보면달은 배가 고픈가 봐요으음, 꾀꼴대는 소리가꼬록대는 소리로 들리네요베란다에서 저절로 ...2013-09-12 11:00:00
- 맹인- 이우걸맹인은 사물을 손으로 읽는다손은 그가 지닌 세계의 창이다마음이 길을 잃으면쓸쓸한 오독(誤讀)도 있는…눈 뜬 우리는또 얼마나 맹인인가보고도 만지고도 읽지 못한 세상을빈 하늘 뜬구름인양하염없이 바라본다.- 시선집 <어쩌면 이것들은> 중에서☞ 손으로 세상을 읽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팡이를 거쳐서 손...2013-09-05 11:00:00
- 안부- 최승자 안부- 최승자나더러, 안녕하냐고요?그러엄, 안녕하죠.내 하루의 밥상은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 한마디로 진수성찬이 되고요,내 한 해의 의상은당신이 보내주는 한 번의 미소로 충분하고요,전 지금 부엌에서 당근을 씻고 있거든요.세계의 모든 당근들에 대해시를 쓸까 말까 생각하는 중이에요.우연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 ...2013-08-29 11:00:00
- 처서- 성선경나도 이제한창때는 지났나 봅니다.내 영혼 어디선가설렁설렁 바람이 불고내 무릎 아래에서알기는 칠월의 귀뚜라미라고말끝마다 사랑 사랑 합니다.나는 이제 막 고개 위를 올라섰는데속으로 굽어져 이제 찬바람이 이네요.누가 이런 변화를 알고 이름 지었을까요.불혹(不惑),나는 그쯤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시...2013-08-22 1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