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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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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버드콜- 이명숙

  • 기사입력 : 2024-01-01 2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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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 뒷산 너머로 쏙 들어가 어둑어둑했다. 엄마 심부름을 다녀오던 나은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낡은 빌라들이 빼곡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골목 입구. 열 걸음쯤 앞에 ‘귀신 창문’이 보였다.

    ‘귀신 창문’은 괴기스러운 흐느낌 소리가 안에서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문은 이 층 건물의 중간 높이쯤에 달려 있다. 그 아래 빈 공터에는 주인 없는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먹다 버린 과자 봉지부터 돈을 주고 버려야 하는 부서진 가구들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귀신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머리끝이 쭈뼛거리며 숨이 턱 막혔다. 일단 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벽에 몸을 붙였다. 열린 창틀 위로 새 한 마리가 살포시 앉았다. 벽에 붙어 위로 올려다본 나은이 눈에는 새하얀 솜뭉치처럼 보이는 새 한 마리와 그 새를 쓰다듬는 손만 보였다. 누구일까? 솜뭉치 새가 재잘대며 앉아있는 걸 보면 귀신은 아닐 것 같았다. 무서운 마음보다 궁금한 마음이 강해졌다. 벽을 따라 게걸음으로 천천히 ‘귀신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야, 너 새매 아냐? 아기 새구나. 어쩌다 혼자 된 거야? 이 근처엔 감나무도 없는데.”

    모습은 안 보였지만 말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솜뭉치처럼 생긴 저 새가 새매구나. 새매가 감나무를 좋아하나? 새에 대해 모르는 게 없네. 시은이처럼.’

    나은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동생을 떠올렸다. 그리고 늘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 속의 버드콜을 쓰다듬었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겨준 선물을.

    저녁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지만 나은이는 오늘도 엄마의 슈퍼마켓 심부름을 나왔다. 언제나처럼 두부를 비닐봉지에 담고 있는데, 가게 안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양말도 신지 않은 슬리퍼에 목이 어깨까지 늘어난 반소매 티 차림이었다. 하지만 나은이가 놀란 건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차림새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 그 아이는 초코 빵을 입속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계산도 하지 않고. 아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입 주위로 빵가루를 덕지덕지 묻힌 그 아이는 같은 반 친구 지훈이였다.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돈을 받다가 나은이는 몇 번이나 동전을 떨어트렸다. 자꾸만 손이 떨렸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주인아줌마와 지훈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출구로 향했다. 급하게 나오다 다리가 꼬여 넘어질 뻔했다.

    지훈이는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 갈 즈음 전학을 왔다. 하지만 전학을 온 후 지난 몇 달 동안 누구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등하교할 때 말고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표정도 없어서 아이들은 지훈이를 정지화면이라고 불렀다. 리모컨을 누르면 화면이 꺼지듯이 지훈이도 어딘가로 사라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도둑질까지 하며 허겁지겁 빵을 먹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아까 장면이 자꾸 떠올라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을 향해 걷는데 뒤편에서 타닥타닥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어깨를 잡았다. 나은이는 뒤를 돌아보다 너무 놀라 ‘으악!’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 지훈이였다. 지훈이가 뭔가를 내밀고 있었다. 그건 나은이의 버드콜이었다. 아까 슈퍼마켓에서 나올 때 주머니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은이는 당황해서 떨리는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때였다.

    “야! 너 거기 서. 이 초코 빵 네가 훔쳐 먹었지?”

    주인아줌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뒤늦게 빈 초코 빵 봉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놀란 지훈이는 나은이의 버드콜을 움켜쥔 채 건너편 골목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나은이도 덩달아 함께 달렸다. 나은이에게 버드콜은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지훈이가 도망간 방향으로 쫓아 뛰어갔다.

    한참을 달려 멈춘 곳은 뒷산 산책로 입구였다.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니 아줌마는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나은이는 얼른 지훈이 손에서 버드콜을 낚아채었다. 지훈이는 멋쩍게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학교에서처럼 역시나 지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도 잠시, 버드콜을 유심히 바라보던 지훈이는 손잡이를 돌려보라는 시늉을 했다. 버드콜은 두루마리 휴지심 크기의 나무로 된 통 위에 동그란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 손잡이를 열쇠 돌리듯 돌려보라는 것이었다.

    나은이가 버드콜을 지훈이에게 내밀며 물었다.

    “동생이 만들어준 버드콜이라는 거야. 이거 뭔지 알아?”

    지훈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마침 날아오르던 새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맞아. 이 버드콜로 새소리를 흉내내서 새랑 대화할 수 있대.”

    지훈이가 잘 알고 있다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은이는 버드콜을 지훈이 손에 쥐여 주었다.

    “돌려보고 싶으면 돌려 봐.”

    다른 사람 앞에서 꺼내 본 적 없던 물건이다. 엄마도 만지려고 했다가 나은이가 고함을 치며 난리를 쳐댄 후로는 시도도 안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훈이가 만지는 건 괜찮았다. 미안해서였을까? 아까 슈퍼마켓에서 못 본 척하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엄마 심부름하고 남은 돈으로 빵 값을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나도 한 번도 안 돌려봤어.”

    왜? 라는 눈빛으로 지훈이가 쳐다보았다.

    “무서워서. 버드콜 소리가 동생 목소리 같아서.”

    지훈이는 잠시 손에 쥔 버드콜을 내려다보더니 동그란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삐이- 삐-걱, 찌지직’

    나무통과 쇠로 된 손잡이의 마찰음이 낡은 수도꼭지 같은 소리를 내었다. 새들이 이 소리를 정말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멀리서 이름 모를 새들이 메아리처럼 대답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에 벌어졌다.

    갑자기 버드콜이 형광빛을 내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형광봉이 된 것 같았다. 그러자 영화관 영사기처럼 환한 빛 사이로 희미하게 영상이 어른거렸다. 남녀 어른 두 명이 서 있었다.

    “엄마? 아빠?”

    지훈이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나은이는 기절할 만큼 놀랄 일이 연이어 벌어지니 머리가 멍해지고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영상 속 지훈이 부모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잠시 허공에 떠 있다가 손을 흔들며 사라락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아저씨가 쓰고 계시던 모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노란 새가 그려진 모자였다. 버드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형광봉은 온데간데없고 원래의 평범한 손잡이가 달린 나무통으로 돌아가 있었다. 지훈이는 한참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아빠, 엄마가 쓰던 모자야.”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한참을 울고 난 지훈이는 모자를 가슴에 소중하게 품으며 말했다.

    “이제 말을 하네?”

    그동안 어떻게 입을 닫고 살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지훈이 입에서는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엄마, 아빠는 소방대원이셨어. 몇 달 전 화재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다가 그만 하늘나라로 가셨어. 나 혼자 두고.”

    지훈이는 모자에 달린 새 마크를 쓰다듬었다. 나은이는 모자의 노란 새 마크가 왠지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정확하게 떠오르진 않았다.

    “이 노란 새는 용감한 소방대원들의 자랑이야. 새매라고, 가장 용감한 매 중 하나거든. 아빠가 늘 이 새매처럼 용감해야 한다고 했어.”

    “아, 그 솜뭉치처럼 새하얀 가슴털이 북실북실한 새?”

    “잘 아네? 동생이 버드콜을 만들어줬으면 새를 좋아했겠구나.”

    “응, 새도 좋아하고 꽃도 좋아하고. 그래서 버드콜도 만들어서 새들이랑 맨날 쫑알거렸대.”

    나은이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동생과 나은이 둘 다 기를 수 없었다던 엄마를 지금도 이해하긴 힘들다. 하지만 더 미운 건 나은이 자신이었다. 시골 할머니 댁으로 동생이 내려가야만 했던 것도, 동생이 아팠던 것도, 제대로 병원도 못 가보고 죽게 된 것도 모두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외로웠겠구나. 나처럼.”

    나은이는 대답을 피하고 화제를 바꿨다.

    “그럼 지금은 누구랑 살아?”

    “……고모부, 고모랑 살고 있어.”

    “그럼 혼자가 아니네.”

    이번에는 지훈이가 대답을 피했다.

    “그러지 말고 너도 버드콜을 한번 돌려 봐. 아무래도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처럼 버드콜을 돌리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 주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이 버드콜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시은이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못 이기는 척 버드콜을 받아 지훈이처럼 천천히 돌려보았다.

    ‘찌이이-지-직’

    신기하게도 새들이 앞다퉈 돌림노래를 부르듯 이쪽, 저쪽에서 응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아까처럼 버드콜에 형광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나은이 앞에 희미한 영상 속 동생 시은이가 서 있다. 나은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동생. 보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시은이가 금방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시은아, 나 때문이야. 시골에는 내가 갔어야 했어. 네가 엄마랑 살았더라면…….”

    시은이는 그냥 웃고만 있다. 나은이가 두 팔을 허우적대며 가지 말라고 애원해도 시은이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영상이 사라진 자리에 노란 수선화가 놓여 있었다. 한참을 노란 수선화를 바라보던 나은이는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할머니 댁 텃밭의 노란 수선화 꽃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삐뚤빼뚤 시은이가 나무 팻말에 적어 놓았던 글씨.

    ‘자신을 사랑하세요.’

    나은이와 지훈이는 노란 새 모자와 노란 수선화를 서로 가리키며 오랜만에 너털웃음을 웃었다. 버드콜이 마음속을 무겁게 짓눌러 오던 돌덩이를 가져간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지훈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슈퍼마켓 근처에도, 동네 어디에서도 지훈이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서 엄마 심부름으로 산 물건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계산하던 아줌마와 주인아줌마의 대화에 나은이는 귀가 솔깃했다.

    “지난번 그 초코 빵 훔쳐먹은 애가 글쎄 귀신 창문집 애였지 뭐유?”

    “그 집에 애가 있었어? 한 번도 못 봤는데?”

    “구청에서 뭔 조사를 나왔는지 그 집 아저씨랑 그 애가 밖에 나와 있더라고. 내가 찾았다 요 도둑놈, 하고는 그 부모한테 따졌지.”

    주인아줌마는 말끝을 흐렸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잘했네. 단단히 혼꾸멍을 내야지 원. 도둑질이 뭐야, 도둑질이.”

    “근데, 애 아빠가 아니더라고. 구청 직원이 가고 나니까 애한테 눈을 부라리면서 막 때리는 거야. 밥도 못 얻어먹었는지 바싹 말랐더구먼. 그러더니 이놈의 자식 이제 학교도 안 보내야겠다고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가더라니까. 쯧.”

    나은이의 귓속에서 엥엥 모기떼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지훈이는 학교에 안 나온 것이 아니라 못 나온 것이었다. 아스팔트에 팔이 쓸린 것처럼 심장이 무언가에 쓸린 것 같았다. 서럽게 울던 지훈이의 모습과 동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버드콜이, 아니 지훈이 부모님과 시은이가 남겨주고 간 노란 새 모자와 노란 수선화가 가슴 속에서 북을 울리고 있었다.

    나은이는 귀신 창문을 향해, 지훈이에게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의 버드콜을 손으로 움켜쥐자 용기가 샘솟는 것 같았다. 귀신 창문은 여전히 괴물의 입처럼 음산했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입을 닫고 있다. 하지만 나은이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처음 슈퍼마켓에서는 지훈이를 외면했지만, 이제 아니다. 너 자신은 소중하다고, 용맹한 새매처럼 용기를 내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날처럼 버드콜을 꺼내 돌렸다.

    ‘찌이이-지-직’

    열리지 않는 창문을 안타깝게 응시하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드콜을 돌렸다. 이제 버드콜의 형광빛 영상은 필요 없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 용감한 새매와 노란 수선화가 새겨져 있으니까.

    애타는 나은이 마음을 알았는지, 촤라락 귀신 창문이 열렸다. 창문 안에서 여윈 모습의 지훈이가 말갛게 웃고 있었다. 나은이는 버드콜을 흔들어 보였다. 노란 수선화가 함께 춤추는 것 같았다.

    지훈이 등 너머로 방문이 부서질 듯 요란하게 쿵쿵 흔들리고 있다. 고모부의 고함소리도 들렸다. 지훈이는 힐끗 한 번 돌아보더니 창턱에 올라섰다. 결심한 듯 노란 새매가 그려진 모자를 흔들어 보이고는 머리에 꾹 눌러 썼다. 언제 날아왔는지 새하얀 가슴털이 북실북실한 새매가 응원하듯 지훈이 주변을 날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제일 높은 철봉에 처음 올랐을 때 딱 그 높이네.”

    지훈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귀신 창문 창턱에서 길바닥까지 딱 그 높이. 내려설 용기와 잡아 줄 손이 모두 필요한 딱 그 높이. 나은이는 얼른 주변을 돌아보았다. 잡동사니 쓰레기장에 나뒹구는 찢어진 침대 매트리스를 있는 힘껏 창문 아래쪽으로 끌어당겼다. 너무 무거워 한 번에 아주 조금씩밖에 움직이지 못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용감한 지훈이가 웃으며 내 손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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