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시’ 당선작] 머그잔- 박태인
- 기사입력 : 2024-01-01 22: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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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되려는 순간이 있어요 얼굴을 뭉개고
입술 꾹 다물고
자꾸 그러면 안 돼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여요 나는
물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어요
창틀에 놓여있던 모과의 쪼그라든 목소리가 살금살금 걷는 듯한 아침
어김없이 당신의 그림자는 식탁에 앉아 있어요
뜨거운 것으로 입을 불리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해요, 조금 더 따뜻한
우리는 언제쯤 깨질 것 같나요? 이런 말은 슬프니까
숨을 멈추고 속을 들여다보면 싱크홀 같거나 시계의 입구 같거나 울고 있는 이모티콘 같아요 두 손에 매달려 쓸데없이 계속 자라는 손톱처럼 똑똑 자르면 될 것 같은 시간을 말아 쥐고 있는 기분
나는 내 손을 스스로 잘라 버릴지도 몰라요
언젠가
바깥이 나를 꺼내다 마는 것처럼 어둠으로 찬장 문을 닫아버리거나
빛으로 나가지도 못 하게 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요
햇살이 손바닥을 통과해 더 깊이 가라앉는 동안
내 손은 가끔 바깥에서 들어와요
집을 통째로 들어 물처럼 몸이 출렁일 수 있도록
흔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이면 매일 보고 만지는 머그잔이 어째 좀 수상해요
나는 또 물로 그린 그림이 되죠
오늘은 당신의 그림자를 좀 젖혀봐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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