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시상의 전개 방식 삶의 진정성과 맞물려
- 기사입력 : 2024-01-01 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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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고려말에 생성되어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혈관에 면면히 흘러오고 있는 정형 미학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인 문학 장르가 시조이고, 현대시조의 발전을 견인한 것 중 첫째가 제국주의의 억압에 굴하지 않으려는 저항정신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시조를 가리켜 ‘민족문학’이라 서슴없이 일컬을 수 있는 이유다. 2024년 신춘문예 시조 부문 응모편수가 368편으로 경남신문 역사상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시조가 세대를 이어 활발히 전달되고 있다는 방증이라서 기쁘다.
다만 응모작들을 일별한 결과, 정형 시학의 제한된 형식이 진부한 언어적 틀과 사고의 반복으로 이어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형식적 규범이 절제미를 조성하는 시조일수록 행간의 여백과 언어의 함축성은 필수적이다. 시란 자아에 갇혀 닫힌 세계가 아니라 자아를 내려놓고 자아를 여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시조는 형식과 의미와 표현이라는 세 개의 과녁을 동시에 노려야만 하는 까다로운 장르다. 치열함이 결여된 시조 이해는, 역설적이거나 낯설게 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시의 진부함으로 드러나게 마련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고와 인식, 전근대적 삶의 편린들, 정형성에 기초한 율의 효과 및 표현이 지나치게 동요적인 작품, 삶이 체감되지 않음으로 정서적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평면적 재현, 파격이 아니라 정형의 미숙함에 불과한 시들을 일차와 이차에 걸쳐 걸러냈다. 남은 작품은 ‘한겨울에 매미 울다’와 ‘탄소 보폭, 더듬어 읽다’ 및 ‘사북’이었다. 한겨울 구세군 종소리와 노숙자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밥차를 소재로 한 ‘한겨울에 매미 울다’, 그리고 온실가스를 주목함으로써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는 ‘탄소 보폭, 더듬어 읽다’는 둘 다 사회성과 당대성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인식의 건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두 작품 모두 탁월한 형상화를 보이고 있었다. 기성 문인들의 세례를 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은 점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병석에 누운 아들을 지키는 노모의 뜨거운 모성(母性)에 결국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시상의 전개 방식이 삶의 진정성과 맞물리는 ‘사북’은, ‘어머니’야말로 이 땅에서 신의 사랑을 대신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만든다. 감동으로 말하자면 신춘문예 최고가 될 듯한 작품이라는 심사자의 말이 생각난다. 시인에게 기쁜 일이 일어났듯, 작품 속 동생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해본다. 아울러 시인의 무한한 발전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임성구·신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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